길거리마다 ‘현수막 정쟁’… 누구를 위한 ‘합법’인가요

길거리마다 ‘현수막 정쟁’… 누구를 위한 ‘합법’인가요

곽소영 기자
곽소영 기자
입력 2023-01-08 17:52
수정 2023-01-08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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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외광고물 규제 대폭 완화

시민들 상대당 비난 내용에 ‘눈살’
“무분별 설치에 위협 느껴” 민원도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이 서울시교육청 예산과 관련해 현수막을 통해 공방을 벌이는 모습. 사진은 최근 서울 양천구 오목교역사거리에 걸려 있던 현수막. 서민민생대책위원회 제공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이 서울시교육청 예산과 관련해 현수막을 통해 공방을 벌이는 모습. 사진은 최근 서울 양천구 오목교역사거리에 걸려 있던 현수막.
서민민생대책위원회 제공
최근 법 개정으로 각 정당이 정책이나 정치 현안을 다룬 현수막을 자유롭게 내걸 수 있게 되면서 현수막을 통한 장외 ‘정치 싸움’이 본격화하는 모양새다. 국회가 정당 활동의 자율성을 보장하겠다며 옥외광고물 규제를 대폭 푼 탓에 ‘합법’이 된 현수막 난립으로 국민만 피로도가 커지는 상황이다.

서울 성동구 왕십리에 사는 박모(28)씨는 8일 도로 한복판에 걸린 ‘야당은 압수수색, 측근은 사면복권’의 글귀가 적힌 더불어민주당 서울특별시당의 현수막을 보고 싶지 않은데도 현수막 크기가 워낙 커서 오며 가며 자주 보게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부나 상대 정당을 비난하는 내용이 대부분인데 미관상 좋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고 지적했다.

이태원 참사 시민 분향소가 설치된 용산구 등 다른 지방자치단체들 역시 현수막 난립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삼각지역 인근에는 각 정당에서 내건 현수막이 도로를 따라 일렬로 펼쳐져 있다. 분향소를 찾은 심영화(63)씨는 “내용에 동의할 수 없는 현수막도 무분별하게 설치돼 있어 볼 때마다 눈살이 찌푸려진다”고 말했다.

정책 홍보 등의 목적이 아닌 정쟁에 현수막이 이용되면서 각 지자체의 민원 게시판에도 항의 글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서울 중구 민원 게시판에는 “이제 말과 글을 배우기 시작하는 아이들이 다니는 어린이집 바로 옆에 ‘중구의회 규탄한다’는 현수막이 붙어 있다. 한쪽의 정치색이 드러나는 일방적인 현수막이라 ‘나와 생각이 다르면 안 된다’는 내용의 현수막을 볼 때마다 불쾌하다”, “중구 일대와 중구청, 주민센터 등 관내 기관 외벽에 대형 현수막이 설치돼 있는데 작은 건물을 지날 때면 위협을 느낀다”는 내용 등이 올라와 있다.

지난달 11일 시행된 개정 옥외광고물법과 시행령에 따라 각 정당은 허가나 신고 없이 정치적 현안 등에 대해 15일간 게시할 수 있다. 시행령을 통해 정당 명칭, 정당·설치업체 연락처, 기간 등을 표시하도록 했지만 이 정도의 장치로 현수막 난립을 막을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게다가 오는 4월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있어 현수막을 이용한 정쟁은 더 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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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호택 배재대 행정학과 교수는 “정치 싸움이 현수막으로 옮겨붙으면서 원치 않는 국민에게도 노출되고 정치가 ‘싸구려화’돼 정치 불신과 혐오를 키울 수 있다”면서 “국민에게 현수막 게시 장소나 절차 같은 조건을 따지는 것처럼 각 정당에도 정해진 현수막 게시 장소에서만 설치토록 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2023-01-09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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