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ATCA 협약 임박… 정부·금융권 ‘온도차’
오는 12월 우리나라 금융기관을 이용하는 미국인의 정보를 미국 국세청에 의무적으로 제공해야 하는 협약이 체결될 예정이어서 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미국인의 정보만 넘기는 것이지만 이 미국인이 한국 기업이나 한국인과 거래했을 경우 관련 정보가 함께 넘어갈 공산이 높아서다. 우리 정부와 미국은 지하경제 양성화 등의 취지에서 관련 제도 시행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이중국적자 분리 등 넘어야 할 산이 적지 않다.5일 금융당국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최근 은행연합회와 은행 관계자 등을 불러 각 은행별로 ‘해외금융기관 계좌신고제도’(FATCA) 대응체계 마련을 주문했다. 정부는 올 연말까지 패트카 협약을 맺기로 미국과 이미 합의했다. 제도 시행 목표 시한은 2015년이다.
협약이 체결되면 국내 금융기관들은 거래 고객 가운데 미국인의 이름과 계좌번호 등의 정보를 미국에 신고해야 한다. 위반하면 미국에서 얻는 금융수익을 벌금으로 내고 현지 활동에도 불이익을 받게 된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각 금융사가 미 국세청과 직접 협약을 맺는 번거로움을 줄이기 위해 정부 차원에서 협약을 맺기로 했다”면서 “금융사 개별적으로 정보를 보낼 것인지 한 곳으로 집약해 보낼 것인지는 추후 논의해 확정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금감원 관계자는 “협약 체결 시한이 7개월밖에 남지 않아 금융사별로 업무 매뉴얼과 전산, 교육자료, 내부통제 기준 및 절차 등을 미리 준비할 것을 지시했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쌍방향 정보 교환’이 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상호 교환이 이뤄지게 되면 유명 연예인이나 운동선수, 재벌총수 등 우리나라 사람이 미국 금융기관과 거래한 정보 내역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새 정부의 음성소득 탈루 차단이나 조세정의 실현 의지에도 부합한다. 하지만 지금 논의되는 구조는 우리만 정보를 미국에 주는 쪽이다.
물론 기재부는 “상호 교환을 원칙으로 협약을 추진할 방침”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힘의 논리상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게 금융권의 관측이다. 우리보다 앞서 미국과 협약을 맺은 일본도 정보를 ‘주기만’ 하고 ‘받지는’ 못하고 있다. 유럽은 쌍방향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설사 정보 교환이 이뤄지더라도 미국에서 한국에 투자한 금액이 훨씬 많고 거래 내역도 많아 우리가 내줄 정보는 방대한 반면 미국에서 받을 정보는 미미할 것”이라면서 “정보 제공 범위에 따라 미국인과 거래한 한국인이나 한국 기업 등의 정보가 샐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했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지금으로서는 계좌 잔액만 알려줄 공산이 높아 이렇게 되면 기업 정보가 샐 우려는 없다”고 말했다.
금융권은 내심 불편한 기색이다. 인력과 전산장비 구축에 따른 비용 부담이 적지 않은 데다 정보 누락 땐 불이익까지 받게 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득보다 실이 많다’는 반응이다.
고객 이탈 가능성도 거론한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주민등록증을 갖고 있는 상태에서 미국 시민권을 딴 한국인이 국내 은행 통장으로 계속 거래할 경우 이를 분간해 내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면서 “순이익도 감소하는데 까다로운 검증 잣대를 들이대면 미국 교포들의 ‘탈(脫)한국’ 현상까지 생겨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 분야 전문가들이 많지 않은 것도 문제라고 덧붙였다.
백민경 기자 whit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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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TCA(Foreign Account Tax Compliance Act) 미국이 추가 세수 확보를 위해 해외계좌 세금보고법을 제정하며 도입한 제도로 국내 은행, 보험사 등 금융회사는 일정 금액 이상 미국 거주자나 법인의 거래 계좌를 보유했을 경우 이를 미국 정부에 정기적으로 보고해야 한다.
2013-05-06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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