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신흥국 위기의 승자”(미국 월스트리트저널, 8월28일), “신흥국 위기 속 한국 차별화 지속 예상”(마이클 페롤리 JP모건 수석이코노미스트, 9월6일), “저평가된 한국 시장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영국 파이낸셜타임즈, 9월13일)….
요즘 한국 경제가 ‘잘 나간다’는 국내외 평가가 이어지고 있다. 이는 각종 지표도 뒷받침한다. 코스피는 11일 2,000선을 회복했다. 원화가치는 강세를 지속하고 있다. 8월 수출 증가율은 작년 동월 대비 7.7%로 지난 2월(8.6%) 이후 최고치다.
그러나 ‘한국 경제’와 ‘한국의 민간 경제’는 따로 놀고 있다. 특히 가계부문이 그렇다. 나라 경제가 회복돼도 가계소득은 늘지 않아서다. 가계의 신용위험은 여전히 위기 수준이다.
◇ 표면적 지표와 따로 노는 민간 경제
15일 한국은행·기획재정부 등에 따르면 한국의 올해 2분기 전년 동기 대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2.3%를 기록했다. 작년 2분기 2.4%에서 4분기 1.5%, 올 1분기 1.5%로 떨어졌다가 반등에 성공한 것이다. 지난해 연간 성장률 2.0%도 뛰어넘었다.
그러나 가계의 실질소득 증가율(전년 동기 대비)은 작년 4분기 3.6%에서 올 1분기 0.3%로 급락했다. 2분기에도 여전히 1.3%에 머물렀다. 이는 작년 연간 소득증가율(3.8%)의 3분의 1에 불과하다. 가계 경제가 국가 경제의 개선세에 훨씬 못 미치는 것이다.
물가도 지표와 체감의 차이가 크다. 지표물가 상승률은 올 상반기 1.3%로 낮은 수준을 유지했다. 그러나 현대경제연구원이 조사한 같은 기간의 체감물가는 5.4%로 4배 이상 됐다.
지난해 8월 같은 조사에서도 체감물가는 5.0%로 지표물가(1.2%)를 크게 웃돌았다. 체감물가와 지표물가의 차이 역시 이 기간 3.8%포인트에서 4.1%포인트로 벌어졌다. 지표와 체감경기의 간극이 더욱 커진 셈이다.
취업자도 그렇다. 8월 취업자 수 증가 규모가 43만2천명으로 11개월 만에 최대치를 찍었다. 취업자 수는 지난 5월 26만5천명, 6월 36만명, 7월 36만7천명으로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그러나 동시에 실업자도 증가했다. 5~6월 9천명씩 줄던 실업자 수는 7월 되려 3만3천명이 많아지더니 8월에도 1만9천명 불어났다. 여름철 더 많아진 경제활동인구를 한국의 고용시장이 충분히 흡수하지 못한 것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경제수치들은 좋아졌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한 셈이다. 현오석 부총리도 지난 13일 국회 업무보고에서 “주요 지표가 완만한 개선세를 보이지만 민간의 회복 모멘텀이 확고하지 않다”고 평가했다.
◇ 한국은 대외안전자산…그러나 가계는
이 뿐만 아니다. 한국의 경상수지 흑자는 상반기 297억7천만달러로 사상 최대다. 외환보유액 역시 3천311억달러로 역대 최고치다. 둘 다 미국의 양적완화(QE) 축소를 앞두고 한국을 돋보이게 하는 차별화 요인이다. 대외건전성이 그만큼 좋다는 얘기다.
반면에 가계의 건전성은 나빠졌다. 가계부채는 지난해 964조원에서 올 2분기 980조원으로 뛰었다. 1999∼2012년 가계부채 증가율은 연평균 11.7%로 가계소득(5.7%)의 두배다. 나라 곳간에 외자가 쌓이는 동안 국민 통장엔 빚만 쌓인 것이다.
한국의 국가신용위험도 개선됐다. 국채 5년물에 붙는 신용부도스와프(CDS)프리미엄은 이달 13일 75.71bp(bp=0.01%포인트)로 작년 평균 109.94bp를 크게 밑돈다. CDS프리미엄은 국가가 부도날 확률을 반영한다. 낮을수록 확률이 적은 것이다.
반대로 가계의 신용위험은 고공비행 중이다. 한국은행의 가계 신용위험지수는 2012년 1분기 9에서 2분기 22로 급격히 뛰고서 4분기 31까지 치솟았다. 올해는 1분기 28, 2분기 22로 내려왔지만, 여전히 금융위기 당시 최악의 수준(25)과 비슷하다.
외국 자금은 한국으로 들어오고 있다. 외국인 투자자는 8월 한 달간 약 19억달러의 한국주식을 순매수했다. 아시아 주요 7개국 증시 중 외국인이 순매수를 보인 곳은 한국이 유일하다. 코스피도 이 기간 0.6% 올랐다. 역시 7개국 중 유일한 상승이다.
그러나 가계에는 돈이 흐르지 않는다. 가계 및 비영리 단체가 보유한 시중통화량(M2)의 증가율은 7월 2.5%(평잔·원계열)로 기업(8.3%)은 물론 전체 평균(4.6%)에도 크게 못 미쳤다. 국내로는 돈이 들어오는 데 가계는 극심한 돈맥경화를 겪는 것이다.
유병규 국민경제자문회의 지원단장은 “이는 외환위기와 금융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한국 경제가 수출·제조업 중심으로 경쟁력이 강화되면서 나온 대표적인 문제”라고 지적했다.
임 진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국가 경제성장의 과실이 경제주체, 특히 내수·서비스업에 종사하는 가계에까지 골고루 돌아가지 않고 있다”며 “가계를 위한 좋은 일자리를 창출하고 관련 규제를 유연화하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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