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영주·김종준 등도 연루 정황…국회·청와대 인사 추천도
최흥식 금융감독원장을 낙마시킨 2013년 하나은행 채용비리가 이제는 하나금융 김정태 회장을 겨누는 형국이 됐다.금감원 특별검사단의 검사 결과는 김 회장이 연루됐다고 추정할 만한 정황은 보여주지만, 증거를 확보하지 못해 특검 자료를 넘겨받은 검찰이 키를 쥐게 됐다.
◇ 금감원 “김정태 추정 채용비리 있다”…검찰 수사결과에 따라 퇴진할 수도
금감원 특검단이 2일 발표한 ‘추천 특혜에 의한 주요 합격사례’ 중 눈에 띄는 부분은 김 회장이 연루됐을 가능성이 상당한 추천 건이다.
당시 한 지원자는 서류전형 및 실무면접 점수가 합격 기준에 크게 미달했고 합숙면접에선 태도 불량 등으로 0점 처리됐음에도 최종 합격했다.
이 지원자와 관련된 문서를 보면 최초단계인 서류전형에서 아예 ‘최종합격’이라고 표기돼 있었다. 시작부터 합격이 정해져 있었던 지원자였던 셈이다.
추천자 이름은 ‘김○○(회)’였는데 그는 2013년 당시 하나금융지주의 인사전략팀장이었다.
여기서 ‘(회)’는 회장이나 회장실을 의미한다는 것이 하나은행 인사담당자의 진술이다.
이 때문에 금감원은 김 회장이 인사전략팀장을 통해 특혜채용 민원을 한 것이 아닌가 의심하고 있다. 회장실에서 인사전략팀장, 인사 실무담당자로 민원이 내려왔을 가능성이다.
서류전형부터 합격이 예정돼 있었다는 점 역시 이런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당시 인사전략팀장은 이후 승승장구해 현재 하나은행 전무를 맡고 있다.
다만 금감원은 이 추천자가 결국 김 회장을 의미하는 것인지에 대해 추가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다. 최성일 특검단장이 “추정은 되지만 특정할 수는 없다”고 언급한 것이 이런 맥락이다.
금감원은 이제 검찰이 사실을 규명해주길 기대하고 있다.
검찰 수사결과에 따라 최악에는 김 회장이 자리에서 물러나야 하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
◇ 함영주·김종준 등 전·현직 경영진에도 화살…국회·금감원도 연루
이번 특검 조사에서는 전·현직 하나금융 계열사 임원들이 다수 연루됐다.
추천자가 ‘짱’으로 표시된 지원자 6명 중 4명이 최종 합격했는데 이 중 3명은 서류전형(2명) 또는 면접단계(1명)에서 합격 기준에 미달했음에도 최종 합격했다.
‘짱’은 김종준 2013년 당시 하나은행장으로 아들 친구 2명과 다른 금융지주사 임원의 부탁으로 타 은행 직원 자녀 2명을 추천했음을 인정했다.
함영주 부회장 겸 KEB하나은행장 역시 채용비리에 연루됐다.
‘함□□대표님’으로 표기된 지원자는 합숙면접 점수가 합격 기준에 미달하였음에도 임원 면접에 올라 최종 합격했다.
검사 결과 ‘함□□대표님’은 2013년 당시 하나은행 충청사업본부 대표(부행장)였던 함 행장이지만, 그는 채용비리 연루 사실을 부인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모 하나은행 부행장이 추천한 지원자는 ‘반드시 돼야 한다는 의견’으로 표시돼 서류전형과 실무면접 점수가 합격 기준에 미달했음에도 최종합격됐다.
최 전 금감원장을 의미하는 ‘최흥식 부사장 추천’으로 표기된 지원자는 서류전형 점수(418점)가 합격 기준(419점)에 미달했지만, 서류전형을 통과해 최종 합격했다.
하나은행의 특혜 추천 명단에는 다른 권력기관 관계자들도 포함됐다.
추천내용에 ‘국회정무실’로 표기된 지원자는 실무면접 점수가 합격 기준에 미달했지만 합숙면접에 올라 최종 합격했다.
‘청와대 감사관 조카’로 표기된 지원자는 서류전형 점수가 합격 기준에 크게 미달했지만 최종합격했다. 최종 단계인 임원 면접에서 점수를 조작된 부분도 포착됐다.
‘감독원’으로 표기된 지원자도 2명 있었는데 서류·실무 면접에서 특혜를 받아 통과했으나 최종 불합격했다.
◇ “서류전형부터 남자 우대” 성별·출신 대학에 따라 특혜 합격
채용과정에서 성별과 출신 대학에 따라 차별한 정황도 잇달아 확인됐다.
하나은행은 최종 임원 면접에서 합격권에 있던 여성 지원자 2명을 탈락시키고 대신에 합격권 밖에 있던 남성 2명의 순위를 높여 최종 합격시켰다.
또 2013년 상반기에는 애초부터 남녀 채용비율을 9.4:1, 하반기에는 4:1로 정해 차등 채용했다.
이에 따라 하반기 서류전형에서 서울지역 여성 합격선은 467점으로 남성 합격선인 419점보다 훨씬 높았다.
금감원은 서류전형 합격선을 동일하게 적용했다면 서류전형 여성 합격자 수가 619명 증가하고 남성은 그만큼 감소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또 특정 대학 졸업자에게 특혜를 부여하기 위해 인사부장과 팀장 등이 비공식 회의를 열고 탈락자 14명을 합격 처리하기도 했다.
◇ 양파 껍질 벗기듯 새로 쏟아져 나오는 의혹…하나은행은 ‘묵묵부답’
지난번 금감원 검사 결과에 이어 의원실 자료공개, 검찰 수사, 특검단 검사로 한 꺼풀씩 벗길 때마다 채용비리 의혹이 계속 쏟아져 나오면서 하나은행은 진퇴양난의 상황에 몰리고 있다.
하나은행은 금감원이 검사에서 채용청탁을 받아 공고에 없는 전형을 적용하거나 점수를 임의 조정하는 등 특혜채용을 저질렀다는 의혹을 샀다.
하나은행이 정상적인 절차였다며 이를 부인하자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정의당 심상정 의원은 인사부가 임원 면접 후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위스콘신대 출신 지원자의 점수를 올리고 기타 대학 출신의 점수는 내린 상세 자료를 공개했다.
이후 강모 당시 인사부장이 채용 건은 자신의 전결로 처리했다고 밝혔지만, 검찰 수사에서는 이를 뒤집을 정황이 나오고 있다.
뒤이어 검찰은 금감원으로부터 이첩받은 자료에서 하나은행 인사담당자 메모에 ‘장’(長)과 ‘합격’ 등의 단어가 남아있다는 점을 확인했다.
검찰은 ‘장’에 주목해 김 회장 또는 함 행장이 연루됐을 가능성을 확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에는 특별검사에서 김 회장과 함 행장 연루 가능성이 한층 짙어졌다.
이와 관련해 하나은행 측은 “사실관계를 파악 중”이라며 말을 아꼈다. 검찰 수사를 받는 만큼 숨죽이고 상황을 확인하는 모양새다.
김 회장 역시 채용비리 의혹과 관련해 금감원 특별검사단에 “기억나지 않는다”고 진술했다.
김 회장은 지난 23일 주주총회에서도 주주들이 최 전 원장과 같은 추천을 한 바 있느냐는 질문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한 바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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