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K팝 공연장/임태순 논설위원

[씨줄날줄] K팝 공연장/임태순 논설위원

입력 2011-12-27 00:00
업데이트 2011-12-27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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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 시절 시를 배우면서 한국인에게 면면히 흐르는 정서는 ‘한’(恨)이라고 배웠다. 그래서 김소월의 시 ‘진달래’는 시험에도 자주 출제됐으며,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라는 연을 설명하며 감상에 젖던 선생님의 열강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소월은 그 시절 단연코 가장 좋아하는 ‘국민시인’이었다. 한국 현대사가 구한말 외세의 침입, 일제 강점기,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가난과 분단으로 얼룩졌으니 한국인에게 한이 없었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그래서 시는 물론 대중가요도 슬픔과 비탄에 잠긴 애조 띤 노래가 대중의 마음을 파고들어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지금 한국인의 정서에서 한은 실종돼 자취를 감췄다. 무역규모가 1조 달러가 넘고 올림픽과 월드컵 등 지구촌 이벤트를 치른 덕분인지 한은 시나브로 사라지고, 대신 기쁨과 즐거움이 넘치는 ‘흥’(興)으로 대체됐다. 그 중심에는 K팝이 자리하고 있다. K팝은 가볍고 쉬운 가사에 경쾌하고 발랄한 리듬, 여기에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꽉 짜여 돌아가는 댄스로 지구촌 젊은이들을 빠져들게 하고 있다. 일본, 중국 등 아시아권을 넘어 프랑스, 영국 등 유럽은 물론 브라질 등 멀리 남미까지 번지고 있으니 가히 그 인기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고 보면 우리들에게도 ‘쾌지나 칭칭나네’ ‘강강술래’로 대변되는 신명나는 민요와 신바람이 있었던 만큼 오랫동안 숨겨져 있던 흥의 유전인자가 뒤늦게 발현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정부가 K팝 열풍을 잇기 위해 7000석 규모의 K팝 전용공연장을 설립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으나 예산 확보가 쉽지 않은 모양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공연장 건립을 위한 타당성 조사와 연구용역을 실시하기 위해 5억여원의 예산을 올렸으나 국회 예결위 계수조정 소위에 계류돼 있어 관계자들이 애를 태우고 있다는 소식이다. 문화상품의 경제적 유인효과는 결코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영국 애든버러 축제만 해도 축제를 보기 위해서만 250만명의 관광객이 몰릴 정도다. K팝의 욱일승천하는 기세로 볼 때 K팝이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상품으로 성장할 가능성은 매우 높다고 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말로는 문화를 들먹이며 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하지만 막상 예산 배정단계만 들어서면 지역구사업이다 하면서 도로나 다리 등 건설사업에는 후하고 문화 인프라 구축에는 인색한 것이 현실이다. 모래 속에서 진주를 캐내는 것도 국회의원이 할 일이다.

임태순 논설위원 stslim@seoul.co.kr

2011-12-27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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