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CCTV의 진화/임태순 논설위원

[씨줄날줄] CCTV의 진화/임태순 논설위원

입력 2013-05-06 00:00
수정 2013-05-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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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디스토피아 작가 조지 오웰은 소설 ‘1984’에서 미래사회는 집, 사무실, 거리 등 곳곳에 텔레스크린이 설치돼 사람들의 일거수 일투족이 감시를 받는다고 했다. 물론 텔레스크린은 소설이 쓰여진 1948년에는 나오지 않아 작가가 상상 속에 그려낸 것이다. 오웰은 미래사회는 텔레스크린 외에도 다양한 신기술이 개발돼 통제를 받을 것으로 예상했다. 미국의 미래학자 데이비드 굿만은 연구를 통해 이를 실증했다. 소설 1984에서 시민들을 감시·통제하는 장치는 모두 137개인데 이 가운데 1972년까지 현실화된 것은 80가지였으며, 6년 뒤인 1978년에는 100가지가 넘었다.

오웰은 감시·통제사회의 위험성을 경고했지만 정작 ‘폐쇄회로(CC)TV 왕국’은 영국이다. 영국은 500만대의 CCTV가 보급돼 세계 CCTV 시장의 20%를 차지하고 있으며 국민들은 하루 평균 300차례 CCTV에 노출된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도로와 주택가 골목은 물론 아파트, 지하철 등 곳곳에 CCTV가 설치돼 있다. 얼마 전에는 학교폭력을 예방하기 위해선 교내에 설치된 CCTV를 화상도 좋은 것으로 교체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올 정도로 CCTV는 공공생활에도 깊숙이 침투하고 있다. 국내 CCTV는 2010년 339만 6000여대에서 지난해에는 371만 1000여대로 최근에는 연 평균 8.1%씩 증가하고 있다. 몇년 전 서울에 사는 회사원이 출근하면서 3시간 동안 40차례 CCTV에 찍힌다는 보도가 있었던 걸 보면 우리나라도 CCTV에 중독된 나라 중의 하나임에는 틀림없다.

CCTV 영상 자료를 분석하는 기술이 발달하면서 CCTV가 ‘보는 기계’에서 ‘생각하는 기계’로 진화하고 있다고 한다. 미국 연방수사국(FBI)은 보스턴 마라톤 테러 사건을 수사하면서 사건 현장 주변에 있는 CCTV 600대의 영상 등을 ‘포렌시카 GPS’ 기술을 활용해 분석, 50여만명의 인파 속에서 테러범 2명을 찾아냈다. 포렌시카 GPS 기술은 옆모습을 정면 입체 사진으로 바꾸는 것으로, 우리나라 국립과학수사연구원도 확보하고 있다. 국내 CCTV 분석기술은 고속주행 차량의 번호판을 98% 판독할 정도로 세계 최고 수준에 근접했다.

범죄 예방의 파수꾼, 사생활 침해 논란 속에서도 CCTV의 보급은 앞으로 더욱 늘 것이다. 인권침해보다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는 불가피하다는 인식이 강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CCTV 등에 의해 통제와 감시를 받는 ‘기술적 전체주의’가 더욱 기승을 부리고 이에 비례해 숨을 곳도 점점 없어진다는 사실이다. 오웰이 다시 태어나면 미래를 어떻게 그릴까.

임태순 논설위원 stslim@seoul.co.kr

2013-05-06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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