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동호 새벽을 열며] 한국인의 열정적 예술혼

[최동호 새벽을 열며] 한국인의 열정적 예술혼

입력 2011-07-07 00:00
업데이트 2011-07-07 0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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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한국의 다섯 젊은이들이 네 부문을 석권했다는 보도를 보았다. 파리에서 ‘K팝’이 열광을 불러일으킨 다음의 일이다. 예로부터 한국인들의 뛰어난 예술적 자질은 잘 알려져 왔다. 그러나 20세기 들어서면서 한국인들이 지닌 장점은 사라지고 부정적인 점들만 전면에 부각되었다. 일제의 식민지가 된 다음 이런 시각은 부동의 사실처럼 받아들여졌다. 근대화라 명명된 시대의 모든 우월적인 것은 서구적인 것이었으며 문학에 있어서도 이런 경향은 절대적인 것이었다. 시의 경우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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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 국문학과 교수·시인
고려대 국문학과 교수·시인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면 근대시에서 이룬 뛰어난 성취에는 결코 외적 영향으로만 이루어질 수 없는 근본적인 요소가 있다. ‘새것 콤플렉스’에 사로잡혀 있던 시절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내장되어 있는 열정과 예술적 자질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거나 제대로 활용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한국 근대시 형성에 근원적 요소로 작용한 것이 민요였으며 그중 하나가 서도소리였다는 것을 입증하는 자료를 보면서 이제 우리 근대문학을 바라보는 시각을 역전시켜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문학평론가 하응백 박사가 각고의 노력으로 출간한 ‘창악집성’이 이를 구체적으로 입증하고 있다. 김소월의 ‘엄마야 누나야’가 서도소리 ‘자진아리’에 나오는 구절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든가, 김동인의 소설 ‘배따라기’ 역시 서도소리를 배경으로 주인공의 특성을 설정했다는 것은 주목을 요한다. 최근 전해수 박사도 주요한의 ‘불놀이’가 ‘수심가’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밝혀 주었다. 근대문예지의 첫자리에 놓이는 ‘창조’의 동인들 대부분이 평양 지역 출신이었는데, 이들이 유년시절 보고 듣고 자란 노래가 서도소리였다는 것은 이런 역사적 사실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근대시 초기의 대시인 김소월을 ‘민요시인’으로 부르기도 했는데, 이는 그의 스승이자 서구 상징시를 한국에 최초로 번역 소개한 김억의 명명이었다. 서구시 번역의 선구자이지만 누구보다 민요의 중요성을 깨닫고 있었던 김억은 한국인들의 영혼에 아로새겨진 민요의 가치를 잘 알고 있었으며 이를 활용한 시인이기도 했다. 김소월은 스승의 이러한 가르침을 성공적으로 실천한 천재적 시인이었다.

김소월 시를 읽고 있으면 시가 노래가 되고 노래가 시가 되는 정서적 울림을 경험할 수 있다. 노래와 시가 나누어지고 노래가 시로 탈바꿈하는 문학사적 지점에 김소월이 자리잡고 있으며 그의 시적 호소력의 상당부분이 민요로부터 발원하고 있다는 것에는 간단히 넘어갈 수 없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 그것은 서구문학의 영향으로 한국 근대문학이 시작되었다고 보는 ‘타율론’을 극복하는 논리적 전환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문화적 전파와 지배의 ‘타율론’에서 내재적 ‘자율론’으로의 전환은 20세기 전체를 지배하던 타율의 논리를 극복하는 논리적 전환이라는 점에서 기념비적이다.

한류를 상징하는 드라마가 동남아시아를 풍미하더니 이제 유럽에서 ‘K팝’이 열광적 호응을 불러일으키고 북미로 진출할 것이라는 소식이 들리고 한국인들이 ‘클래식의 올림픽’이라는 차이콥스키 콩쿠르를 석권했다는 것은 우리 민족이 지닌 예술적 열정과 재능이 단순한 모방이나 일시적 우연이 아님을 입증하기에 충분하다. 이는 분명히 한국인의 영혼에 내장된 열정적 재능의 발현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은 20세기 초 근대화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불사조처럼 일어나 21세기 초 디지털 혁명의 선두에서 세계를 선도하는 국가가 되었다. 이는 한국인이 지닌 열정적 예술혼의 역동적 실현 결과일 것이다. 디지털 혁명의 동력은 문화적 혁명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다시 집중해야 할 것은 한국인의 유전인자 속에 내장된 창조적이며 주체적인 에너지를 더욱 발전시켜 이를 극대화하는 일이다. 현재 도처에서 빈발하는 사회적 갈등 국면을 열정적 예술혼으로 승화시켜 창조적 국면으로 전환하는 것이 우리의 당면 과제이다.

고려대 국문학과 교수·시인
2011-07-07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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