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운 논설위원
이 홀대와 외면의 분위기가 정치적인 이유에서인지, 안전 때문인지, 러시아에 대한 근본적인 무시에서 비롯된 것인지 알려진 게 없다. 아무튼 월드컵을 코앞에 둔 유럽이 이런 적은 없었지 싶다.
국제축구연맹(FIFA)으로 가 보자. 제프 블라터 전 회장이 2015년 부패 스캔들로 물러난 뒤 새롭게 거듭나는 중이다. 40유로 넘는 선물은 받지 않을 정도로 체제 개선 의지가 느껴진다고 한다. 대신 ‘합법적’인 돈을 버는 일에 더욱 집중하는 모양이다. 예컨대 2022년 카타르월드컵 이후 후원사를 늘리는 일을 본격 준비 중이라고 한다.
후원사 확장은 2026년 대회부터 적용될 본선 진출국 48개국으로의 확대 계획과 맞물려 있다. 본선 진출국이 12개나 늘어나니 광고 효과도 급증할 것이라는 논리 아래 후원금도 대폭 상승시키려는 조짐이다.
물론 후원사로서는 거꾸로일 수 있다. 지금까지는 상당한 진입 장벽 때문에 ‘월드컵 후원’이라는 보이지 않는 프리미엄도 누릴 수 있었지만, 문턱을 낮추면 후원사로서의 희소 가치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미 충분한 지명도를 갖춘 ‘글로벌 기업’들은 후퇴를 고민할 수도 있다.
이 공백을 메울 기업들은 상당수 중국 회사들로 예상된다. FIFA의 정례 또는 간헐적 모임에 중국이 주요 화제로 오른 지 오래라고 한다. 모임마다에는 일본인들이 사라지고, 그 빈자리를 중국인들이 채우고 있다는 전언이다. 합법적인 돈이 아쉬운 FIFA는 중국이 필요하고, 세계를 향한 지렛대가 중요한 중국은 FIFA가 반갑다.
오는 13일 FIFA 총회는 2026년도 개최지 선정 외에 큰 이슈는 없다고 하나, 물밑에서는 이 모든 것이 가닥이 잡힐 가능성이 크다. 현 정관상 2030년까지는 대회를 개최할 수 없는 중국은 개최 가능 시기를 앞당기려 노력할 것이고, 이 과정에서 ‘사업’의 물길이 갈릴 수 있다. 2026년부터 실시하게 될 개최국 확장도 2022년도부터 시작하자고 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 결과가 어떠한 것이든 중국은 축구계에서 한 번 더 굴기할 것이다.
이변이 없다면 총회는 2026년 미국ㆍ캐나다ㆍ멕시코 공동 개최를 결정할 가능성이 높다. 연방수사국(FBI)까지 동원해 블라터를 낙마시킨 미국이 그 결과물을 챙기는 것이다. 이번 대회 티켓 판매에서 북미, 중남미가 각각 1, 2등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는 것일 수 있다. 유럽은 전체적으로 티켓 판매가 대단히 저조하다.
이번 월드컵 대회는 유럽의 전유물과도 같았던 축구 권력이 미국, 중국에 상당 부분 전이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이 일이 작은 일일까? ‘축구란 무엇인가’에 대한 판단에 따라 계량 수치는 달라질 수 있다. 다만 축구에 미친 또 다른 동네 중동과 아프리카만 떠올려도 그 수치는 급증할 것이다.
대형 이슈와 ‘게임’의 연속이다. 오는 12일 북ㆍ미 회담, 13일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지만, 잠깐 눈을 들어 러시아월드컵도 바라볼 일이다.
2018-06-01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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