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대한민국 국회는 법안 잠재우는 특급 호텔인가

[사설] 대한민국 국회는 법안 잠재우는 특급 호텔인가

입력 2012-02-09 00:00
수정 2012-02-09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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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대 국회가 마지막 순간까지 게걸음 치고 있다. 지난해 내내 뜸 들인 국방개혁법안이 표류 중인 가운데 계류 중인 정부법안만 415건에 이른다. 코앞에 닥친 4·11총선의 게임의 룰이 될 선거법을 놓고 밀고 당기느라 민생법안은 아예 뒷전이다. 여야는 며칠 안 남은 회기 동안 이견이 없는 민생법안들부터 우선 처리해 최소한의 결실이나마 거두기 바란다.

사실 18대 국회는 역대 국회 중 가장 비생산적이란 지적을 받고 있다. 엊그제 법제처의 분석자료를 보자. 18대 국회에서 이명박 정부가 제출한 법률안의 국회 통과 기간이 253.5일로, 노무현(168일)·김대중(94일)·김영삼(70일) 정부 때에 비해 터무니없이 길었다. 의원들은 현 정부와 국회 간 소통 부족을 이유로 꼽고 싶을진 모르나, 가당치 않은 일이다. 약사법 개정안이 그제 가까스로 보건복지위에 상정되기까지 과정을 보라. 다수 국민이 감기약 같은 상비약을 약국 외에서 살 수 있기를 바라건만, 의원들은 여야 한통속으로 부정적 자세였다. 의원들이 불특정 국민보다는 선거에서 확실한 한 표가 될 이익집단 눈치 보기에 급급한 결과다.

오는 16일 18대 국회는 사실상 막을 내린다. 회기는 5월 말까지이지만, 의원들의 마음은 이미 총선 콩밭에 가 있는 형국이 아닌가. 며칠만 더 허송세월하면 상정된 법안들은 쌀 속의 뉘를 고르는 과정도 없이 폐기되고 말 운명이다. 의원 입법 중에는 의원들이 실적 올리기 차원에서 발의한 법안도 없진 않을 게다. 그러나 정부 발의 415개 법안이 무더기로 사장된다면 큰 문제다. 친환경농업육성법 개정안이나 건강기능식품 개정안 등 일자리 창출 및 국민불편 해소 관련 법령이 무산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이 뒤집어 쓸 수밖에 없다.

여야는 총선을 앞두고 온갖 달콤한 선심성 정책을 경쟁적으로 쏟아내고 있다. 모두 19대 국회에서 입법화해야 실현 가능한 정책들이다. 그러면서 당장의 민생과 직결될 법안들은 소관 상임위 서랍 속에 잠재우고 있는 꼴이다. 당리당략에 눈이 어두운 직무유기다. 이러니 정당정치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심화되고, 국민은 정치권 밖에서 새 인물을 찾게 되는 것이다. 여야는 입법부 무용론이 더 확산되기 전에 남은 회기 동안 민생법안 처리에 속도를 내야 할 것이다.

2012-02-09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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