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관위, 선거법 위반 유권해석 내려…문제 있는 靑 인사 시스템도 고쳐야
김기식 금융감독원장이 어젯밤 자진 사퇴 의사를 밝혔다. 이른바 ‘5000만원 셀프 후원’ 의혹에 대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위법이라고 유권해석을 내리자 곧바로 “선관위의 위법 결정을 존중한다”며 물러나겠다고 했다. 김 원장이 그동안 관행이니, 청탁은 들어주지 않았다느니 하면서 내놓은 변명이 무색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엊그제 국회의원 시절 문제 되는 행위 중 하나라도 위법이라는 객관적 판정이 있으면 사임토록 하겠다고 한 만큼 김 원장도 더이상 버틸 수는 없었을 것이다.선관위 논의에서 가장 큰 쟁점은 김 원장이 19대 국회의원 임기 말 전·현직 의원 모임인 ‘더좋은미래’에 5000만원을 기부한 행위의 위법성 여부였다. 이 단체가 이 돈을 김 원장이 소장으로 있던 더미래연구소에 기부함으로써 김 원장이 다시 월급으로 가져가는 결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선관위는 이에 대해 공직선거법 제113조에 위반된다고 해석했다. 국회의원이 정치자금으로 비영리법인 등에 종전 범위에서 회비를 납부하는 것은 위법은 아니지만, 그 범위를 벗어난 금전을 제공하는 것은 법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기부액이 더미래연구소의 회비 20만원을 초과한 점을 지적한 것으로 보인다. 김 원장은 기부 당시 이 같은 문제를 인식하고도 기부를 강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선관위에 해당 사항을 질의해 위법 소지가 있다는 회신을 받았다는 것이다. 공직자로서의 도덕성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김 원장이 국회의원 시절 피감기관의 돈으로 해외출장을 간 데 대해선 신중한 견해를 내놓았다. 선관위는 정치자금 수수에 해당할 소지가 있다고만 했다. 정치자금법에 위반되는지는 해외출장의 목적과 내용, 피감기관 등의 설립 목적과 비용부담 경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돼야 한다는 의견을 덧붙였다. 위법 여부를 섣불리 판단하기 어렵지만 그 소지는 있을 수 있다는 뉘앙스다.
김 원장은 국회 정무위 소속으로 피감기관인 한국거래소와 민간은행 등이 비용을 부담한 해외출장에 다녀온 데 대해 거센 비판을 받아 왔다. 공무를 위한 출장이었다는 점, 피감기관 지원이 ‘관행’이란 점을 내세우며 이에 맞서 왔다. 하지만 아무리 공무를 위한 출장이라고 해도 자신이 감시·감독하는 기관이 비용을 대는 것은 위법 여부를 떠나 상식에 어긋난다. 현재 김 원장의 이 같은 의혹들에 대해 검찰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만큼 위법 여부가 명명백백히 밝혀져야 할 것이다.
김기식 파문으로 청와대의 인사 검증 시스템은 또다시 문제를 드러냈다. 청와대는 실패를 거듭하는 인사 검증 체제를 어떻게 개선할지 점검해야 한다. 또한 능력과 도덕성을 두루 갖춘 사람으로서 금융개혁을 이끌어 나갈 새 적임자를 찾도록 노력해야 한다. 더 철저한 인사 검증으로 이러한 사태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2018-04-17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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