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지 60여년, 한국 현대사는 한마디로 격동의 역사다. 해방과 분단, 전쟁의 참화 속에서도 우리는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룩했다. 그러나 한편 억압의 시대는 크나큰 고통을 안겨줬다. 숱한 정치적 사건들이 모자이크돼 있는 현대사를 온전히 이해하고 해석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오죽하면 학계에서도 현대사는 민감한 분야라는 이유로 기피 대상이 됐겠는가. 현대사는 ‘불신의 역사’라는 오명에서 벗어나야 한다. 하지만 요즘 정치권의 ‘5·16논쟁’을 보면 회의가 앞선다. 현대사 이해의 키워드인 5·16을 냉정한 눈으로 바라보기보다는 정파적 진영논리를 내세우기 일쑤다. ‘그들만의 신념’에 사로잡힌 어설픈 역사몰이꾼들이 넘쳐난다. 비판적인 거리를 두고 역사의 진실을 밝혀내려는 노력이 아쉽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경선 후보의 5·16 발언이 논란을 낳고 있다. 그는 5·16을 불가피한 최선의 선택이라고 했다. 국민의 삶을 챙길 일도 많은데 계속 역사논쟁을 하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요컨대 역사의 판단에 맡기자는 얘기다. 그 바탕에는 5·16은 쿠데타가 아니라 ‘구국의 혁명’이라는 도덕적 확신이 깔려 있다. 5·16 옹호 혹은 미화로 요약되는 그의 현대사 인식은 과연 온당한 것인가.
국가지도자에게 올바른 역사관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국민과 소통하기 위해서는 균형 잡힌 역사의식이 필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3년 참여정부를 출범시키면서 대한민국의 역사를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자가 득세한 역사”라고 불렀다. 이 같은 ‘자학사관’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얼마나 많은 사회적 비용을 지불했나. 다양한 역사해석의 문을 닫아버린 채 일면의 진실만을 강조하는 것은 비상식에 속한다. 5·16이 최선의 선택이라는 주장 또한 상식적인 역사관에 기초했다고는 보기 어렵다. 야권은 물론 여권 일각에서도 5·16은 불행한 쿠데타라고 입을 모은다. 그래도 박 후보는 요지부동이다. ‘개인사관’의 굴레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하는 그의 5·16관(觀)은 가히 제왕적이라 할 만하다.
최근 박 후보의 5·16 발언과 관련, 캠프 내에서도 국민이 공감할 수 없다면 표현을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고 한다. 5·16 발언 이후 이틀 만에 지지율이 4.5% 포인트나 떨어졌다니 그럴 만도 하다. 하지만 그런 움직임이 한갓 중원의 ‘들토끼’(중도층) 마음을 돌리기 위한 선거공학적 필요에 의한 것이라면 너무 옹색하다. 국가 최고지도자를 꿈꾸는 유력 대권주자라면 현실이 아니라 역사에 살 각오가 돼 있어야 한다. 박 후보는 엊그제 제주 4·3사건을 언급하며 현대사의 상처를 치유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다분히 5·16 발언의 역풍을 의식한 말이다. 어쨌든 본인에게는 아킬레스건이나 다름없는 현대사 인식에 변화의 조짐이 보였다면 반가운 일이다. 5·16 문제도 그처럼 좀 더 유연하고 공변된 자세로 접근했으면 좋겠다. 역사논쟁을 단순히 ‘과거와의 싸움’으로만 보는 건 단견이다. 역사의 판단에 맡기자는 말은 무책임에 가깝다. 역사에 대한 정당한 이해 없이 미래에 대한 구상은 불가능하다. 역사논쟁은 치열하면 치열할수록 좋다. 우리 현대사에 흉한 생채기를 남긴 5·16에 대한 판단을 언제 열릴지도 모를 ‘역사의 법정’에만 맡겨둘 수는 없다.
박 후보는 역사인식에 대한 검증을 두려워해선 안 된다. 그의 주위에 진을 친 책상물림 정치이데올로그들의 ‘조언 아닌 조언’에 기댈 일이 아니다. 그들이 아무리 이로정연한 언설을 늘어놓은들 감동할 국민은 없다. 박 후보가 직접 국민 앞에 나서 선은 이렇고 후는 이렇다고 다시 한번 분명히 5·16의 진실을 말해야 한다. 헌정질서가 파괴되고 인권이 유린당한 ‘과정’은 어찌됐든 경제성장의 ‘결과’가 좋으니 혁명이라는 식의 5·16론은 누가 봐도 공소하다. ‘절반의 진실’에 불과한 5·16 발언의 완전 수정판을 보고 싶다. 대선이 코앞이다. 역사를 ‘이해’할 준비를 서둘러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역사적 이성을 발휘할 때다.
jmkim@seoul.co.kr
김종면 수석논설위원
국가지도자에게 올바른 역사관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국민과 소통하기 위해서는 균형 잡힌 역사의식이 필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3년 참여정부를 출범시키면서 대한민국의 역사를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자가 득세한 역사”라고 불렀다. 이 같은 ‘자학사관’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얼마나 많은 사회적 비용을 지불했나. 다양한 역사해석의 문을 닫아버린 채 일면의 진실만을 강조하는 것은 비상식에 속한다. 5·16이 최선의 선택이라는 주장 또한 상식적인 역사관에 기초했다고는 보기 어렵다. 야권은 물론 여권 일각에서도 5·16은 불행한 쿠데타라고 입을 모은다. 그래도 박 후보는 요지부동이다. ‘개인사관’의 굴레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하는 그의 5·16관(觀)은 가히 제왕적이라 할 만하다.
최근 박 후보의 5·16 발언과 관련, 캠프 내에서도 국민이 공감할 수 없다면 표현을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고 한다. 5·16 발언 이후 이틀 만에 지지율이 4.5% 포인트나 떨어졌다니 그럴 만도 하다. 하지만 그런 움직임이 한갓 중원의 ‘들토끼’(중도층) 마음을 돌리기 위한 선거공학적 필요에 의한 것이라면 너무 옹색하다. 국가 최고지도자를 꿈꾸는 유력 대권주자라면 현실이 아니라 역사에 살 각오가 돼 있어야 한다. 박 후보는 엊그제 제주 4·3사건을 언급하며 현대사의 상처를 치유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다분히 5·16 발언의 역풍을 의식한 말이다. 어쨌든 본인에게는 아킬레스건이나 다름없는 현대사 인식에 변화의 조짐이 보였다면 반가운 일이다. 5·16 문제도 그처럼 좀 더 유연하고 공변된 자세로 접근했으면 좋겠다. 역사논쟁을 단순히 ‘과거와의 싸움’으로만 보는 건 단견이다. 역사의 판단에 맡기자는 말은 무책임에 가깝다. 역사에 대한 정당한 이해 없이 미래에 대한 구상은 불가능하다. 역사논쟁은 치열하면 치열할수록 좋다. 우리 현대사에 흉한 생채기를 남긴 5·16에 대한 판단을 언제 열릴지도 모를 ‘역사의 법정’에만 맡겨둘 수는 없다.
박 후보는 역사인식에 대한 검증을 두려워해선 안 된다. 그의 주위에 진을 친 책상물림 정치이데올로그들의 ‘조언 아닌 조언’에 기댈 일이 아니다. 그들이 아무리 이로정연한 언설을 늘어놓은들 감동할 국민은 없다. 박 후보가 직접 국민 앞에 나서 선은 이렇고 후는 이렇다고 다시 한번 분명히 5·16의 진실을 말해야 한다. 헌정질서가 파괴되고 인권이 유린당한 ‘과정’은 어찌됐든 경제성장의 ‘결과’가 좋으니 혁명이라는 식의 5·16론은 누가 봐도 공소하다. ‘절반의 진실’에 불과한 5·16 발언의 완전 수정판을 보고 싶다. 대선이 코앞이다. 역사를 ‘이해’할 준비를 서둘러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역사적 이성을 발휘할 때다.
jmkim@seoul.co.kr
2012-08-04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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