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인류사 박물관’의 베이비붐 세대/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금연구센터장

[열린세상] ‘인류사 박물관’의 베이비붐 세대/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금연구센터장

입력 2013-05-06 00:00
수정 2013-05-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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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금연구센터장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금연구센터장
1955년부터 1963년 사이에 태어난 약 760만명의 1차 베이비붐 세대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전무후무할 정도로 특이한 집단이다. 전쟁 경험을 빼곤 인류 발전과정에서 겪을 수 있는 대부분을 경험한 유일한 세대이기 때문이다.

과거 ‘아들 딸 구별 말고 하나만 나아도 삼천리는 초만원’이라는 구호 속에 콩나물 시루 교실도 모자라 2부제 수업을 했었으나, 지금은 출산율 제고에 총력을 기울여야 하는 세상이다. 의류 수출을 위해 밤을 새워가며 졸린 눈 비비면서 미싱을 돌렸던 세대, 어릴 적에는 달구지를 탔으나 마이카 시대를 경험하며 컬러 TV와 프로 스포츠를 처음 즐기기 시작한 세대이기도 하다.

산업화와 민주화 과정을 몸소 체험하며 외국에 본격 진출해 국제적인 안목을 갖기 시작한 세대도 바로 이들이다. 소로 농사짓던 시대의 보릿고개도 경험하고, 산업·후기산업사회를 거쳐 스마트폰으로 대표되는 정보사회에서 살다 보니, 과거 수천년을 살았어도 경험하지 못한 일들을 베이비붐 한 세대가 모두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상황이 이러니 인류사 박물관의 상석은 베이비붐 세대에 예약된 것 같다.

이처럼 유별난 베이비붐 세대 상당수가 노후 준비를 못하고 있다는 기사가 언론에서 연일 보도되고 있다. 부모와 자식 부양에 대한 이중부담을 의미하는 ‘낀 세대’로 불리는 베이비붐 세대 상당수가 정작 자신의 노후는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우려 때문인지 베이비붐 세대 최대 관심사 중 하나인 정년 연장법이 국회에서 전격 통과되었다. 이는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의사결정권을 틀어쥐고 있는 베이비붐 세대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정년 연장이라는 전리품을 확보했음에도 베이비붐 세대 상당수가 제대로 노후를 준비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앞으로도 노후소득 보장에 대한 문제 제기는 더욱 거세질 것이다. 집단의 영향력이 크다 보니 우리 사회의 베이비붐 세대 눈치보기도 심해질 것 같다.

이처럼 강력한 집단인 베이비붐 세대가 역사의 전면에서 물러나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있다. 우리나라 산업화 과정에서 과실을 가장 많이 챙긴 세대, 그 과정에서 소득격차 또한 가장 많이 벌어진 세대, 이러한 베이비붐 세대의 노후문제 해결방안을 베이비붐 세대 자신들이 제시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이기 때문이다. 베이비붐 세대에 대한 정책방향이 어떻게 결정되느냐에 따라 대한민국호(號)의 장래가 걸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급속한 산업화 과정에서 평균적으로 과실을 가장 많이 챙긴 베이비붐 세대가 낮은 임금과 비정규직이 대세인 젊은 세대와 후세대에게 자신들의 노후를 모두 책임지라고 하는 것은 너무 무책임해 보이지 않을까?

그대로 내버려두면 엄청난 부담을 후세대에게 전가할 사회보장제도의 개편, 특히 연금제도 개편에 베이비붐 세대가 적극 나서야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고라는 노후빈곤율과 생활의 곤궁함으로 인한 현재 노인세대의 높은 자살률을 획기적으로 낮추기 위해서라도 올바로 된 사회보장제도 운영원칙 확립의 주역이 되어야 할 것이다. 전체 연령층 중 평균적으로는 가장 부유하면서도 베이비붐 세대 내의 소득 양극화로 인해 상당수 베이비부머에게 불가피할 노후빈곤문제 해결 차원에서라도, 세금으로 운영되는 빈곤 예방의 사회보장제도 주 수혜자는 베이비붐 세대 중에서도 저소득층 등 취약계층이 되어야 한다는 공감대를 형성할 필요가 있다.

‘베이비붐 세대 중에 능력 있는 사람은 좀 더 부담하고 경제적으로 취약한 베이비붐 세대가 더 많은 복지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복지제도를 운영한다’는 원칙을 베이비붐 세대가 주도해야 우리나라 복지제도의 재정적·정치적 지속 가능성이 제고될 수 있을 것 같다. 베이비붐 세대가 인류사 박물관의 상석에 떳떳하게 자리 잡으려면 그 정도의 역할은 해야 되지 않을까? 이러한 노력으로 후세대가 “우리가 이렇게 살 수 있는 것이 바로 베이비붐 세대 덕분”이라는 평가를 인류사 박물관에 붙여 준다면 그건 기분 좋은 덤이 될 것이다.

2013-05-06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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