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소은 한국환경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나도 한 해를 뒤돌아본다. 글쎄…, 올 한해처럼 K○○이 유행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물론 몇 해 전부터 K팝을 선두로 조짐은 있었고, 그 영역이 문화계 전반으로 확산됐지만, 지금은 K○○이 문화를 넘어 다른 것과 차별화되는 한국적인 어떤 것을 지칭하는 용어로 자리잡은 것 같다. 훌륭한 일이다. 고유한 브랜드를 갖는다는 것은 다른 사람이 인정해 주는 가치가 동반되지 않으면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환경정책을 연구하는 나의 직업병은 여기에서도 발동돼 뜬금없이 K환경복지로 생각이 날아간다. 다른 나라와 차별화되는 한국적 환경복지란 어떤 것일까? 최근 나의 생각이 자주 머무는 곳이다. 지난 몇 해 동안 우리를 괴롭혀 온 코로나19, 기후위기, 환경재난 등은 대처할 또는 회피할 능력이 미흡한 취약계층에 훨씬 가혹하기 때문이다.
취약계층을 정의하는 기준은 다양하지만, 대략적으로 ‘경제적, 사회적, 생물학적 기준 등으로 다른 계층에 비해 사회 참여의 기회가 제한돼 국가의 개입 없이는 동등한 혜택을 누리기 어려운 계층’으로 요약된다. 따라서 취약계층을 구분하는 경제적 기준은 소득격차가 대표적이며 사회적·생물학적 기준은 어린이, 고령자, 여성, 장애인 등이 대표적이다.
환경복지는 취약계층을 배려한 일반적인 사회복지의 개념에 헌법에 명시된 환경기본권이 고려되면서 논의가 본격화됐고, 인간다운 삶의 질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환경서비스를 보장받는 것으로 개념화됐다. 이후 환경복지는 환경정의, 환경불평등 이슈와 맞물리며 발전했고 최근에는 인간중심의 복지로부터 인간과 자연 간의 상생을 포괄하는 생태복지로까지 개념이 확장돼 가고 있다.
좋은 정책이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환경복지 정책의 설계는 취약계층의 어려움에 공감하고 배려할 수 있는 측은지심이 근간이 돼야 한다고 믿고 있다. 측은지심은 나를 둘러싼 세상에 대한 애정으로부터 출발하기 때문에,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생물·무생물에 대한 배려는 물론 지구라는 행성에 대한 배려를 포괄하는 생태복지의 개념과 맞닿아 있다.
애정이 많으면 잘 살피게 된다. 또 보이는 만큼 애정을 쏟게 되는 게 인지상정이다. 취약계층의 구분은 경제적, 사회적, 생물학적 조건 등을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환경오염물질 및 유해화학물질의 특성을 함께 고려해 세분화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고, 환경요인이 취약계층에 어떤 경로로 영향을 주는지, 그 크기는 어느 정도인지 밝혀내는 과학적인 영향평가도 필요할 것이다. 이것이 K환경복지 설계의 기본이다.
환경복지 정책은 오염물질 또는 유해화학물질과 건강 간의 상관관계를 고려한 환경보건법에 근거한 정책이 대표적이다. 환경보건법 제15조에 따르면 어린이, 노인, 임산부 등과 같은 전통적 민감계층과 함께 산업단지, 폐광지역, 교통밀집지역 또는 미세먼지와 같은 특정 오염물질로 인한 건강영향이 우려되는 지역의 주민이 취약계층으로 명시돼 있다. 경제사회적 취약계층 구분과 더불어 오염물질과 유해화학물질의 확산 경로에 근거한 취약지역을 반영한 것이다.
기후변화 취약계층도 이상 기후(폭염, 한파 등)와 자연재해 유형(가뭄, 홍수, 태풍 등)에 따라 세분화돼야 한다. 이러한 내용은 이미 제3차 국가 기후변화적응대책(2021~2025)에도 잘 반영돼 있다. 폭염과 한파 같은 극단적인 기상현상의 경우, 영향을 회피하기 어려운 저소득층이 정책의 우선순위 대상일 것이고, 홍수나 태풍 같은 자연재해는 지역 현황을 고려한 우선순위 결정이 필요할 것이다.
어찌 보면 새로울 것이 없고, 이미 많은 전문가들에 의해 연구된 내용일 것이다. 그러나 같은 작업도 애정을 실으면 결과물이 달라진다. 알아 주는 사람도 생기는 법이다. 정책도 마음이다.
2021-12-31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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