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의회와 국민·서방 반응으로 볼 때 미 공습은 물 건너가
미국과 러시아가 화학무기 해법의 ‘기본틀’에 합의하면서 시리아의 화학무기 참사에 따른 미국의 군사개입은 피할 수 있게 된 것으로 보인다.미국과 함께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을 무력 응징해야 한다고 강조한 영국과 프랑스 등 서방도 즉각 합의안을 환영해 이같은 전망에 힘을 보탰다.
그러나 이번 합의가 화학무기에 한정되고 시리아 반군은 알아사드 정권이 무너질 때까지 싸우겠다며 강력 반발해 31개월째 이어진 내전을 끝낼 해법을 찾기에는 아직도 갈 길이 먼 상황이다.
◇군사개입, 갈팡질팡 끝 외교로 기울어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 외곽에서 화학무기 참사가 일어난 지난달 21일부터 합의안이 마련된 이날까지 25일동안 국제사회의 대응책은 군사개입과 외교적 해법 사이를 긴박하게 오갔다.
화학무기 공격을 금지선으로 그어놓은 미국은 즉각 공습 준비에 들어갔고 영국과 프랑스도 발 빠르게 군사개입 절차를 밟았다.
서방과 반군 편에 선 터키 등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회원국들은 유엔 절차가 없어도 전쟁범죄를 처벌하는 정당성을 강조하면서 과거 코소보 개입 전례를 검토하는 등 공습 태세를 갖췄다.
그러나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외교적 해법을 끈질기게 설득했고 영국에서 정부의 군사개입안이 의회에서 제동이 걸리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의회로 공을 넘기는 등 무력개입은 정체상태를 맞았다.
여기에 알아사드 정권의 우방인 러시아와 이란 등이 연일 서방의 공습 방침을 비난하고 ‘3차 세계대전 가능성’까지 언급하면서 강하게 맞섰다.
지난 6일 폐막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는 시리아 해법을 두고 11개국이 별도로 제재를 촉구하는 성명을 채택하는 등 미국과 러시아가 팽팽하게 대립하는 구도가 이어졌다.
하지만 지난 9일 러시아가 시리아의 화학무기를 국제사회 통제 아래 두고 폐기하는 중재안을 내놓으면서 국면이 순식간에 전환됐다.
미국은 개입에 반대하는 국내 여론이 높은 상황에서 러시아의 제안을 환영했고 서방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외교적 해법으로 가닥을 잡기 시작했다.
알아사드 대통령도 화학무기금지협약(CWC)에 전격 가입하는 등 러시아의 뜻에 따르는 행동을 보여줘 사태 해법의 주도권이 러시아로 넘어간 양상을 보였다.
미국과 러시아 외무장관은 12일부터 제네바에서 협상을 시작했으며 결국 사흘째 합의문을 내놨다.
양국은 시리아 정부가 폐기 과정을 이행하지 않으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조치하기로 약속했으며, 미국 의회의 반대기류가 강해 미국의 단독 군사행동은 사실상 무산될 것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특히 그동안 러시아가 ‘어떤 경우에도 군사개입은 안 된다’는 입장을 한결같이 주장해왔다는 점에 비춰 이번 합의는 미국과 러시아가 ‘군사개입 불가’쪽으로 사실상 의견을 모은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영국과 프랑스도 즉각 합의안을 환영했으며 반기문 총장도 유엔이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화학무기 사태 해결돼도 내전 종식까진 먼 길
알아사드 정권은 아직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았으나 이미 화학무기 폐기 방침을 선언했고 러시아의 뜻에 따랐다는 점에서 미국과 러시아의 합의안도 받아들일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세계에서 가장 많은 화학무기를 보유한 것으로 알려진 시리아가 합의안대로 성실하게 이행할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시리아 반군은 이미 정부군이 화학무기를 레바논과 이라크 등지로 옮기기 시작했다며 국제사회가 알아사드 정권을 신뢰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반군은 러시아가 중재안을 내놨을 때부터 전쟁범죄를 저지른 알아사드 정권에 시간만 벌어주는 것이라며 반발했고 이날 합의안에 대해서도 강하게 반발했다.
반군의 주축인 자유시리아군 셀림 이드리스 사령관은 “이 합의안의 어느 부분도 받아들일 수 없다”며 “나와 형제들은 알아사드 정권이 무너질 때까지 계속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정부군의 화력에 밀리는 반군은 화학무기 참사를 계기로 서방이 공습하고 반군에 중화기를 지원해줄 것으로 기대했다.
이번 합의가 화학무기 사태의 해법에 한정된 것으로 31개월째 접어든 내전 자체의 해법은 아니지만 교착상태에 빠진 시리아 평화회의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과 러시아 외무장관은 오는 28일 유엔총회가 열리는 뉴욕에서 다시 만나 시리아 정부군과 반군, 국제사회가 폭넓게 참여하는 평화회의 개최 방안을 논의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평화회의의 한 축인 반군이 화학무기로 민간인 대학살을 저지른 알아사드 정권을 처벌하지 않고 화학무기만 폐기하는 것은 해법이 아니라며 반발하고 있어 회의 불참도 예상된다.
아울러 힘의 균형이 알아사드 정권으로 기운다면 평화회의에서 내전 종식을 위한 해법을 찾기도 어려울 것이란 지적도 제기된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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