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적완화 출구전략 연착륙 시도할 듯…‘제2의 버냉키’ 되나 주목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8일(현지시간)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의 후임으로 ‘온건파’인 재닛 옐런 부의장을 지명하기로 한 것은 최근 미국의 정치·경제 상황이나 의회 사정 등을 고려해 모험 보다는 안전함을 택한 것으로 풀이된다.우선 옐런 부의장은 버냉키 의장과 마찬가지로 대표적인 연준 내 비둘기파로 분류되고 있어 현행 경기 부양 정책을 유지하면서 양적완화(QE) 정책을 점진적으로 축소하는 방식으로 시장에 주는 충격을 최소화할 것으로 점쳐진다.
오바마 대통령이 옐런 부의장보다 선호했던 것으로 알려진 로런스(래리) 서머스 전 재무장관이 여러 구설로 스스로 후보 지명을 철회할 때 미국은 물론 글로벌 금융 시장이 안도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서머스 전 장관 체제가 들어설 경우 현행 월 850억달러인 국채 및 모기지(주택담보대출) 채권의 매입 규모를 점차 줄여나가는 이른바 ‘테이퍼링’(tapering·자산 매입 축소) 속도가 예상보다 훨씬 빨라지고 채권 매입 만료 시점도 더 당겨질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옐런 부의장이 그동안 연준 내에서 보여줬던 경기 진단이나 의사 결정이 버냉키 의장과 거의 유사했던 만큼 버냉키 의장이 구상하는 대로 내년 중순까지 단계적으로 테이퍼링에 나설 공산이 크다.
버냉키 의장은 앞서 지난 6월 FOMC 회의가 끝나고 나서 기자회견을 통해 “우리 예상대로라면 연내 자산 매입 규모 축소를 검토하고 내년 중반께 이 프로그램을 종료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따라서 오바마 대통령과 의회의 2014회계연도(이달 1일∼내년 9월 30일) 예산안 및 국가채무 상한 재조정 협상이 잘 마무리되면 연준은 이달 말 또는 12월 중순 열리는 FOMC 회의에서 첫 양적완화 축소에 착수할 것으로 예상된다.
버냉키 의장의 임기가 내년 1월까지이고 그 바통을 옐런 의장이 이어받는 점을 고려하면 각종 경기 부양 정책을 썼던 버냉키 의장이 ‘결자해지’ 차원에서 양적완화 정책을 끝내기 시작하고 그의 오랜 동료이자 지지자인 후임 옐런 의장이 이를 마무리하게 되는 셈이다.
옐런 부의장은 2010년부터 연준 부의장을 맡아 버냉키 의장과 함께 양적완화 정책을 시행하는데 크게 역할했다.
아울러 이번 지명은 최근 미국의 각종 경기 또는 고용 지표가 연준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데다 당분간 정치권발(發) 불확실성이 이어질 수밖에 없는 현 상황에서 유동성의 지나친 확대나 인플레이션 등을 우려하는 ‘매파’보다는 경기 회복을 우선시하는 ‘비둘기파’의 중용이 더 시의적절하다는 시장의 분석을 오바마 대통령이 수용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옐런 부의장은 지금의 연준 이사진 가운데 고용 문제 해결에 가장 적극적이면서 물가 상승에는 상대적으로 유화적인 태도를 보여왔다.
예산 전쟁으로 의회와 대치 전선을 형성하는 오바마 대통령으로서는 연준 의장인준권을 가진 의회가 선호하는 인물인 옐런 부의장을 지명함으로써 의회를 달래는 효과도 노릴 수 있다.
물론 오바마 대통령이 속한 민주당 의원들이 더 노골적으로 옐런 부의장에 대한 지지 의사를 밝히기는 했지만, 그의 지명을 공화당도 대체로 반긴다는 점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의회에 보내는 화해 제스처의 하나가 될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옐런 부의장이 서머스 전 장관과 후보 지명을 놓고 경합하는 과정에서 민주당 상원의원 20명은 오바마 대통령에게 옐런 부의장을 추천하는 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옐런 부의장이 억제되고 절제된 버냉키 의장과 달리 쉽게 만족하지 않고 강력한 추진력을 갖추고 있다는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의 평가도 있어 그가 미국 중앙은행의 첫 여성 수장이 되면 ‘제2의 버냉키’가 아닌 또 다른 색깔의 정책을 드러내려 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연합뉴스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