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서울에 얼굴 비춘 젤렌스키…주목받지 못한 이유

[단독] 서울에 얼굴 비춘 젤렌스키…주목받지 못한 이유

권윤희 기자
권윤희 기자
입력 2024-03-22 07:49
수정 2024-03-22 07:57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작년 5월 일본, 7월 우크라서 尹 대면
2019년 당선 후 서울 방문 인연도
‘서울 민주주의 정상회의’ 화상 참석
세션 3에 등장, 약 5분 20초 발언
‘글로벌 사우스’ 역할 호소, 화제성은 상실

이미지 확대
20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화상으로 열린 제3차 민주주의 정상회의 본회의 세션 3 ‘글로벌 사우스와의 거버넌스 파트너십’에 참여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2024.3.21 제3차 민주주의 정상회의 홈페이지
20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화상으로 열린 제3차 민주주의 정상회의 본회의 세션 3 ‘글로벌 사우스와의 거버넌스 파트너십’에 참여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2024.3.21 제3차 민주주의 정상회의 홈페이지
지난 18일부터 서울에서 열린 제3차 민주주의 정상회의가 20일 폐회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주도로 2021년 출범한 이 회의가 미국 밖에서 단독으로 개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 의미가 남달랐다.

이번 회의에선 젤렌스키 대통령의 참석 여부도 관심사였다.

그는 지난해 제2차 민주주의 정상회의 ‘글로벌 도전’ 세션에 화상으로 참석해 “러시아는 민주주의의 적”이라며 서방의 즉각적이고 현실적인 지원 필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5월 G7 정상회의를 계기로 젤렌스키 대통령과 첫 정상회담을 하고 같은 해 7월 우크라이나를 전격 방문한 만큼, 이번 서울 회의에서도 두 정상이 화상으로나마 얼굴을 마주할지 이목이 쏠렸다.

더욱이 그는 서울과 이미 인연이 있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2019년 당선 직후 일본에 이어 한국을 공식 방문하려다 상황이 여의치 않아, 전용기로 서울을 사적으로 방문한 바 있다. 단 6시간이었지만 젤렌스키 대통령은 서울의 야경과 발전상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잠실 롯데월드타워에서 한식도 즐긴 것으로 알려졌다.

후보 시절 유세 현장에서는 “민주국가인 한국은 이웃에 독재국가(북한)가 있음에도 어떤 성공을 거둘 수 있는지 보여줬다. 한국은 경제발전과 민주주의를 함께 성취한 나라로 우크라이나의 본보기다”라며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 글로벌 사우스 역할, 평화정상회의 관심 호소
이미지 확대
20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화상으로 열린 제3차 민주주의 정상회의 본회의 세션 3 ‘글로벌 사우스와의 거버넌스 파트너십’에 참여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가운데) 우크라이나 대통령. 2024.3.21 제3차 민주주의 정상회의 홈페이지
20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화상으로 열린 제3차 민주주의 정상회의 본회의 세션 3 ‘글로벌 사우스와의 거버넌스 파트너십’에 참여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가운데) 우크라이나 대통령. 2024.3.21 제3차 민주주의 정상회의 홈페이지
그리고 지난 20일 오후 8시 청와대 영빈관에서 윤 대통령을 비롯해 회의를 공동 주재한 메테 프레데릭센 덴마크 총리와 윌리엄 루토 케냐 대통령, 안토니오 구테레쉬 유엔 사무총장,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저스틴 트뤼도 캐나다 총리 등 총 36명의 정상급 인사들이 화상으로 참여한 가운데 본회의가 열렸다.

한참 보이지 않던 젤렌스키 대통령은 10시 50분 케냐 대통령 주재로 열린 본회의 세션 3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남반구 신흥국과 개도국)와의 거버넌스 파트너십’에 모습을 드러냈다.

루이스 아비나데르 도미니카공화국 대통령 다음으로 등장한 젤렌스키 대통령은 약 5분 20초간 발언하며 힘과 규범 사이의 균형, 글로벌 사우스의 역할 등을 강조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규범 기반 세계의 핵심 기둥이 약해지고 있다. 이제 세계는 규범보다는 힘에 더 많은 것을 걸고 있다. 하지만 힘과 규범은 상호 배타적이지 않다”고 역설했다.

그는 “규범 위반을 처벌하는 힘이 없으면, 규범도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힘을 제한하는 규범이 없으면 힘은 미쳐버리는데, 러시아에서 벌어진 일이 바로 그런 경우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제 우리는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한 사악한 러시아 전쟁의 공정한 종식을 목표로 하며, 모든 국가에 자국의 안보가 깨지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주고 싶다”고 호소했다.

다만 “침략국의 조건이나 우리에게 강요된 조건이 아닌, 공격을 당한 국가의 조건에 따라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전쟁을 끝내면 가능할 것이다. 그것이 공정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정의는 충분한 힘을 가진 글로벌 연대가 뒷받침하는 새로운 국제 규범이 되어야 한다. ‘글로벌 사우스’ 없이 가능할까? 절대 아니다”라며 글로벌 사우스의 역할을 주문했다.

또 스위스에서 개최를 준비 중인 제1회 세계평화정상회의에 글로벌 사우스의 관심과 참여가 절실하다고 읍소했다.

● 한국인 체포·러 대선 의식 ‘로우키’ 접근 해석
● 무관심 속 화제성 상실…잊혀져 가는 전쟁
이미지 확대
20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화상으로 열린 제3차 민주주의 정상회의 본회의 세션 3 ‘글로벌 사우스와의 거버넌스 파트너십’에 참여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가운데) 우크라이나 대통령. 2024.3.21 우크라 대통령실
20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화상으로 열린 제3차 민주주의 정상회의 본회의 세션 3 ‘글로벌 사우스와의 거버넌스 파트너십’에 참여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가운데) 우크라이나 대통령. 2024.3.21 우크라 대통령실
하지만 젤렌스키 대통령의 존재감은 미미했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그의 입에 주목했던 민주주의 진영 반응은 뜨뜻미지근했고, 우크라이나 대통령실발(發) 외에 국내는 물론 회의를 주도하는 미국 언론에서도 젤렌스키 대통령의 서울 민주주의 정상회의 참여 소식을 접하기 어려웠다.

전 세계 언론이 주목한 작년 회의 때와 비교하면 사뭇 다른 분위기다.

일단 한국으로서는 최근 한국인 선교사가 간첩혐의로 체포되는 등 러시아와 민감한 현안이 얽혀 있는 만큼, 젤렌스키 대통령의 회의 참여를 알리는 게 외교적 부담이었을 수 있다.

17일 러시아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블라디미르 푸틴이 5선을 확정지은 직후인 점도 의식해 로우키(low-key)로 접근했을 수 있다.

국제사회의 경우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관심이 떨어지는 추세다.

젤렌스키 본인도 미국 타임지 인터뷰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일부 세계가 우크라이나의 전쟁에 익숙해졌다는 점”이라며 “미국과 유럽에서 전쟁으로 인한 피로가 파도처럼 밀려온다. 그리고 지치기 시작하면 (우크라이나 전쟁을) ‘10번째 재방송은 못 보겠다’는 식으로 바라본다”고 한탄했다.

이로 인해 서방의 지원도 약화하는 형편이다. 특히 미국 의회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600억 달러 규모 군사지원안을 가결하지 않은 채 계류 중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으로선 미국 의회 방문 때에 이어 이번 서울 회의에서도 잊혀져 가는 전쟁의 암울한 현실을 체감했을 터다.
이미지 확대
20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화상으로 열린 제3차 민주주의 정상회의 본회의 세션 3 ‘글로벌 사우스와의 거버넌스 파트너십’에 참여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가운데) 우크라이나 대통령. 2024.3.21 우크라 대통령실
20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화상으로 열린 제3차 민주주의 정상회의 본회의 세션 3 ‘글로벌 사우스와의 거버넌스 파트너십’에 참여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가운데) 우크라이나 대통령. 2024.3.21 우크라 대통령실
일단 젤렌스키 대통령은 올해 스위스에서 첫 평화정상회의를 추진 중이다.

그는 자신의 평화로드맵에 대한 국제사회의 지지를 확보하기 위해 지금까지 국가안보실장급 평화회의를 4차례 개최했다. 지난해 6월 덴마크 코펜하겐, 8월 사우디아라비아 제다, 10월 몰타, 올해 1월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었다.

이번에는 급을 올려 평화정상회의를 추진 중이다.

중국은 여기에 러시아를 참여시키는 방향으로 중재 노력을 하고 있으나, 우크라이나는 여전히 러시아를 초청하는 것에 부정적이며 러시아 역시 중국에 불참 의사를 전달한 상태다.

한편 러시아 외무부는 이번 서울 민주주의 정상회의를 ‘불명예스러운 행사’라고 비판했다.

마리야 자하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은 20일 브리핑에서 “한국이 불명예스러운 행사 개최에 대한 동의를 미리 철회하지 않은 것은 놀라운 일”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어느 정도 독립적인 국가라면 그렇게 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며 “하지만 불행히도 한국은 외국 상급자의 명령에 불복하지 못해 이런 모험을 한 것 같다”고 주장했다.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광고삭제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