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덤 자리 없어…아들은 아버지 주검 업고 걷고 또 걸었다

무덤 자리 없어…아들은 아버지 주검 업고 걷고 또 걸었다

류재민 기자
류재민 기자
입력 2024-06-29 07:00
수정 2024-06-29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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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문화회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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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참상은 멀리서 보면 의외로 건조하게 다가오곤 한다. 글과 사진 등의 매체는 생사가 오가는 절박함을 손쉽게 압축하고 요약해버리기 때문이다. 소식을 자주 접하다 보면 처음에 안타까웠던 마음들도 무뎌져 점점 무관심이 대세로 자리 잡기도 한다.

서울시극단 연극 ‘연안지대’는 그 참상의 현장을 텍스트나 이미지보다는 조금 더 생생하게 경험하게 하는 작품이다. 전쟁의 한복판을 관통하는 인물들을 통해 전달되는 감정과 이들의 절규는 ‘죽은 이를 묻을 자리가 없다’라고 짧게 요약되는 문장이 얼마나 간절하게 목매게 되는 일인지를 보여준다.

‘연안지대’는 레바논 출신 캐나다 작가 와즈미 무아와드의 희곡이 원작으로 아버지의 사망 소식을 들은 아들이 아버지의 시신을 묻을 땅을 찾아 나서는 여정을 그린 작품이다. 드니 빌뇌브 감독의 영화 ‘그을린 사랑’으로 알려진 ‘화염’과 ‘숲’ 등 전쟁 4부작 중 하나로 이번이 국내 초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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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문화회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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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윌프리드는 어느 날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기억조차 희미한 아버지의 부고 소식이다. 어머니 곁에 아버지를 묻으려 하지만 친척들의 반대로 윌프리드는 아버지의 고향으로 떠난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아버지를 아무 데나 묻지 않겠다고 약속합니다. 아버지를 좋은 곳으로 모시고 가 그분의 영혼이 쉴 수 있도록 해드리겠다고 맹세합니다.”

윌프리드는 아버지에 대해 오해했다가 뒤늦게 아버지의 진심을 마주한다. 그런 아버지를 위해 마지막으로 최선을 다하고 싶지만 윌프리드가 그 맹세를 지키긴 쉽지 않다. 전쟁의 상흔이 가득한 고향에는 아버지를 묻을 장소가 마땅치 않은 탓이다. 시신이 널리고 널린 땅에서 죽음의 마지막 자리를 찾기란 여간 난처한 일이 아니다.

무대에서 펼쳐지는 윌프리드의 여정은 전쟁이 벌어지는 현장의 감정들을 무대 위로 고스란히 소환한다. 부모에게 버림받은 마시, 실수로 아버지를 죽이고 어른들을 혐오하는 아메, 남자친구를 잃고 목이 터져라 노래 부르는 시몬, 부모의 죽음을 목도한 뒤 웃어대는 사베, 전화번호부에 적힌 이름을 외우고 적는 조세핀 등 제각각 기구한 사연들은 전쟁이 저마다의 삶에 드리울 수 있는 비극을 다양하게 조명한다. 이들을 통해 지금도 절망적인 상황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이 전해오면서 관객들은 비극의 무게를 더 깊이 실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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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를 묻기 위해 연안지대에 다다르면서 이들의 고단했던 여정은 일단락되지만 삶의 여정은 멈추지 않는다. ‘연안지대’ 속 인물들이 펼쳐내는 이야기는 전쟁과 같은 비극 속에서도 최선을 다해 인간다움을 잃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 일깨우면서 삶의 끈질긴 가능성에 대해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이제는 매일 벌어지는 일이 돼버린 탓에 어느덧 무감각해진 전쟁들의 참상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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