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지만 튄다, 튀니까 산다

작지만 튄다, 튀니까 산다

김기중 기자
김기중 기자
입력 2018-04-02 21:12
수정 2018-04-02 22:46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개성으로 주목받는 독립서점들

50평이하 소형… 매출 1년새 35% 증가
고양이 관련 등 시중에 드문 책 갖춰 인기
커피·맥주 파는 등 다양한 특색도 입소문


“아유 귀여워라. 이 그림 좀 봐.”

여고생 두 명이 그림책 표지를 보며 감탄을 연발하더니 스마트폰으로 연신 사진을 찍는다. 표지에 나온 고양이를 보고 키득키득 웃으며 이야기를 나눈다. 바깥에서 책방을 쳐다보던 외국인 두 명이 두리번거리다 쑥 들어온다. 출입구 오른쪽 벽의 ‘고양이 그림일기’(책공장더불어) 원화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감탄한다.
이미지 확대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골목에 있는 소형서점 ‘유어마인드’에서 한 고객이 진열대의 책을 골라 읽고 있다. 유어마인드는 개인 혹은 소규모 출판사가 낸 독립서적들을 주로 판매한다. 정연호 기자 tpgod@seoul.co.kr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골목에 있는 소형서점 ‘유어마인드’에서 한 고객이 진열대의 책을 골라 읽고 있다. 유어마인드는 개인 혹은 소규모 출판사가 낸 독립서적들을 주로 판매한다.
정연호 기자 tpgod@seoul.co.kr
기자가 지난달 30일 방문한 고양이 전문서점 ‘슈뢰딩거’는 평일인데도 사람들로 북적였다. 이곳은 서울 종로구 마로니에공원 인근 낙산길 언덕에 자리한 40㎡(약 12평) 남짓한 소형서점이다. 고양이 전문서점답게 90% 이상이 모두 고양이 관련 서적이다. 서점에 들어서자마자 왼편에서 ‘고양이 오솔길’, ‘봄은 고양이로다’, ‘스프링 고양이’ 등이 반긴다. 김미정 대표가 봄을 맞아 고른 책이다. 벽면 칠판에는 ‘묘한쓰기살롱’, ‘냥이 굿즈 만들기’, ‘고양이 사진 잘 찍기’와 같은 소규모 강의 안내가 빼곡하다. 국내에서는 구하기 어려운 외국서적들을 비롯해 일본 등에서 사 온 고양이 소품 등이 가게 곳곳에 자리했다. 김 대표는 “알려지기까지 다소 고생했지만, 최근엔 단골이 많은 데다가 커피도 잘 팔려 운영에 큰 어려움이 없다. 소형서점이지만, 반려묘를 키우는 사람이 늘고 있어 앞으로도 운영을 크게 걱정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작지만 개성 있는 아이디어로 무장한 소형서점이 인기다. 중대형 서점과 달리 나름의 큐레이션(책을 골라 진열하는 일)을 자랑하고, 커피는 물론 맥주를 함께 파는 등 특색을 갖춘 곳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입소문이 나면서 지역 명소가 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서점 규모를 165㎡(약 50평) 이하면 소형, 그 이상이면 중대형 서점으로 부른다.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소형서점을 ‘동네서점’이라 부르기도 한다. 일반 출판물이 아닌 개인이나 소규모 출판사가 낸 서점을 다루는 소형서점을 ‘독립서점’이라 한다.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골목에 자리한 ‘유어마인드’는 업계에서 유명한 독립서점이다. 마당이 딸린 2층짜리 주택을 개조한 이 서점은 간판도 없어 초행자는 찾기 어려울 정도다. 그러나 33㎡(약 10평)짜리 서점은 항시 사람들로 붐빈다. ‘이런 곳을 도대체 어떻게 알고 오는 것일까’ 싶은 생각이 들지만, 입소문이 그만큼 무섭다. 5단 서가와 중간에 놓인 원형테이블에 ‘나라는 브랜드’, ‘IANN’, ‘두 면의 바다’, ‘그래서 그랬고 그랬어’, ‘해월리 산책’ 등이 진열됐는데, 일반 서점에서 구하기 어려운 책들이다. 이로 대표는 “80% 이상이 개인 혹은 ‘프레스 소집단’(소규모 출판사)으로 불리는 독립출판사가 낸 책들”이라고 설명했다. 이로 대표는 2010년 마포구 서교동에서 책방을 처음 냈다. 이후 독립출판서점들과 꾸준히 관계를 맺어 왔다. 그는 “시중에서 보기 어려운 책들을 갖췄다는 소문이 나면서 자연스레 소문이 났다. 그래서 서점규모에 비해 많은 사람이 찾는다”고 말했다.

소형서점의 인기는 통계로도 읽을 수 있다. 문체부의 2016년 출판산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출판 관련 매출액 증감을 따져 보니 전년도보다 소형서점의 매출 증가율은 34.7%였고, 중대형은 8.0%에 그쳤다. 매출 감소율은 소형이 17.1%, 중대형이 16.4%였다. 소형서점 일부가 매출이 크게 늘었고, 반대로 떨어지는 비율도 더 높았다는 뜻으로 쉽게 말해 매출 양극화가 심하다는 이야기다. 종사자 규모별로 따졌을 때에도 1~2인 서점은 매출이 27.5% 늘었고, 3~4인은 12.2% 늘어 가장 많이 늘었다. 감소율 역시 1~2인이 19.9%, 3~4인이 14.3%로 가장 컸다.

백원근 책과사회연구소 대표는 이런 현상에 관해 “2014년 11월부터 개정된 출판문화산업진흥법 때문에 10% 이상 할인을 할 수 없도록 도서정가제가 강화되면서 소형서점이 늘었다. 여기에 독립출판물을 비롯해 북큐레이션 등의 문화가 확산하면서 개성 있는 서점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면서 “다양한 출판물이 유통된다는 점에서 분명히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경쟁이 치열해지면 소형서점의 미래는 담보하기 어렵다”고 했다.

소형서점을 운영하는 이들은 소형서점에 관해 ‘별다른 준비 없이 뛰어들었다가 망하기 딱 좋은’ 사업이라고 했다. 김미정 슈뢰딩거 대표는 “단순히 예쁜 책을 전시하는 공간으로선 성공하기 어렵다. 잘되는 곳을 따라하기보다 나름의 콘텐츠가 있어야 소형서점이라도 경쟁력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로 유어마인드 대표 역시 “요리나 건강을 비롯해 아직 전문화하지 못한 분야가 있는데, 그런 분야를 노려야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2018-04-03 23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광고삭제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