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과 연결된 인간, 인간과 연결된 인간

동물과 연결된 인간, 인간과 연결된 인간

이슬기 기자
입력 2020-09-24 17:22
업데이트 2020-09-25 0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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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 작가 토카르추크의 닮은 듯 다른 두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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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그니에슈카 홀란트 감독 영화 ‘흔적’의 포스터. 채식주의와 생태주의, 동물권 수호 등 올가 토카르추크의 신념과 가치관을 담은 소설 ‘죽은 이들의 뼈 위로 쟁기를 끌어라’를 원작으로 했다. 별자리 소설 형식을 취한 토카르추크의 다른 소설 ‘낮의 집 밤의 집’도 이번에 출간됐다.
아그니에슈카 홀란트 감독 영화 ‘흔적’의 포스터. 채식주의와 생태주의, 동물권 수호 등 올가 토카르추크의 신념과 가치관을 담은 소설 ‘죽은 이들의 뼈 위로 쟁기를 끌어라’를 원작으로 했다. 별자리 소설 형식을 취한 토카르추크의 다른 소설 ‘낮의 집 밤의 집’도 이번에 출간됐다.
죽은 이들의 뼈 위로 쟁기를 끌어라
올가 토카르추크 지음/최성은 옮김/민음사/396쪽/1만 5000원

낮의 집 밤의 집
올가 토카르추크 지음/이옥진 옮김/민음사/476쪽/1만 6000원

새로운 노벨상 시즌에 맞춰 2018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폴란드의 여성 작가 올가 토카르추크의 책 두 권이 출간됐다. 범죄 스릴러를 표방한 ‘죽은 이들의 뼈 위로 쟁기를 끌어라’와 별자리 소설의 형식을 취하는 ‘낮의 집 밤의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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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이들의 뼈 위로 쟁기를 끌어라’는 폴란드의 외딴 고원에서 일어난 기이한 죽음으로부터 시작하는 소설이다. 한때 교사로 근무하다가 지금은 별장 관리인으로 일하고 있는 두셰이코는 동물을 학대하던 이웃 왕발과 사사건건 부딪치는데, 어느 날 왕발이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된다. 이어 마을에서는 미스터리한 살인 사건이 연달아 일어난다. 피해자들은 모두 동물 사냥과 연관돼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죽은 이들의 뼈 위로 쟁기를 끌어라’를 관통하는 키워드 하나는 영국의 시인이자 화가인 윌리엄 블레이크(1757~1827)다. 토카르추크는 책의 각 부 도입부에 그의 시를 인용했다. 블레이크는 산업혁명 이후 영국의 물질적 타락을 경험한 뒤 당대 정치, 사회, 문화에 얽힌 다양한 사안에 대해 시를 통해 예언자적 전망을 피력한 인물이다. 자연과 인간이 조화를 이루는 사회를 지향해 생태주의 예술가로 불리기도 한다. 토카르추크는 주인공 두셰이코를 형상화하는 과정에서도 생전 예술가로 인정받지 못하고 살아간 노년의 블레이크 이미지를 참조했다고 한다. 책에는 채식주의와 생태주의, 동물권 수호 등 작가의 신념과 가치관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스릴러 형식이라 가독성이 뛰어나고 서사적인 재미도 있다. 소설은 폴란드 출신 거장 아그니에슈카 홀란트 감독의 영화 ‘흔적’의 원작이기도 하다. 토카르추크가 홀란트 감독과 함께 시나리오를 공동으로 집필했다. 영화는 2017년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은곰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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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브뤼케 베를린 문학상 수상작 ‘낮의 집 밤의 집’은 노벨문학상 수상작인 ‘방랑자들’처럼 토카르추크 특유의 ‘별자리 소설’의 형식을 띤다. 별자리 소설이란 성좌처럼 흩어진 이야기들 속에서 몇 가지 단서를 찾고, 그 단서를 연결점으로 이어 나가는 소설을 가리킨다. ‘방랑자들’보다 20년 전에 쓴 ‘낮의 집 밤의 집’은 토카르추크의 서사적 기법 실험과 풍요로운 상상력의 모태가 됐다. 과거 폴란드와 독일, 구 체코슬로바키아의 일부였던 실롱스크의 작은 도시 노바루다와 접한 피에트로 마을로 이주한 ‘나’. ‘나’는 신비로운 인물 마르타를 만나 노바루다의 역사와 인물들, 콧수염을 지닌 성녀 쿰메르니스의 전설 등을 전해 듣는다. 독립적으로 보이는 사람들의 운명이 실은 매우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는 것을 소설은 씨실과 날실을 엮듯 촘촘하게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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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가 토카르추크 ⓒKarpati&Zarewicz/ZAIKS
올가 토카르추크
ⓒKarpati&Zarewicz/ZAIKS
토카르추크는 2016년 발표한 기고문에서 “인간은 실은 서로가 서로를 놀랍도록 닮은 존재라는 사실을 문학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일깨워 준다”고 말한 바 있다. 그는 소설 안팎으로 여성이나 성소수자 인권, 난민 문제, 동물 학살 등 사회적 이슈에 대해 적극적으로 발언하며 “문학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명제를 꾸준히 실천 중이다. 노벨상 상금의 일부로 폴란드의 문화와 예술을 홍보하고 환경운동을 펼치는 ‘토카르추크 재단’을 설립한 것도 이 같은 행보의 일환이다. 한국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소설 두 권은 문학의 힘을 믿는 이들에게 바치는 토카르추크의 헌사로 보인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2020-09-25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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