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그리움 | 경춘선] 경춘선, 내 인생의 링반데룽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그리움 | 경춘선] 경춘선, 내 인생의 링반데룽

입력 2011-02-13 00:00
업데이트 2011-02-13 10:32
  • 글씨 크기 조절
  • 프린트
  • 공유하기
  • 댓글
    14
눈에 익은 것이 사라지는 것을 바라본다는 것은 마음 아픈 일이다. 우리는 그 아픈 마음의 색깔을 그리움이라고 한다. 그 그리움은 추억이란 이름의 그물에 걸려 우리 곁에 오래오래 머문다.

이미지 확대


이제 경춘선 그 열차의 덜커덩거리는 소리가 추억 속으로 사라졌다. 2010년 12월 24일 밤 11시 50분 경춘선 마지막 디젤 기관차가 여섯 개의 객차를 매단 채 세 번의 긴 기적을 울리며 남춘천역에 들어왔다. 열차에서 내린 사람들은 마지막 열차의 모든 불이 다 꺼지면서 어둠 속으로 가뭇없이 사라질 때까지 숨 죽여 지켜보고 있었다.

비들기호, 통일호, 무궁화호 - 그 동안 속도에 따라 그 명칭을 달리했던 경춘선 열차의 기적소리 71년. 이제 그 누구도 시간 저쪽으로 영원히 사라진 경춘선 열차를 다시는 볼 수 없게 됐다. 오직 기억의 갈피에 아름답게 어려 있는 그때 그 이야기를 찾아 추억 여행에 오르는 일로 경춘선 열차와 다시 만날 뿐이다.

71년 동안 단선 궤도를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달려온 경춘선 열차는 사람마다 그 얽힌 추억이 다를 터. 어떤 사람들에게는 가장 저렴한 가격으로 서울을 오갈 수 있는 고단한 삶의 한 갈피로서 경춘선이 잊히지 않을 것이며 또 다른 사람들에게는 경춘선이 사랑과 낭만의 키워드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동백꽃(생강나무) 피는 계절이 오면 돌아오겠다는 그 말만 믿고 오매불망 춘천역만을 바라보고 산 소양강 처녀에게는 경춘선 열차의 그 기적소리가 기다림의 긴 한숨이었을 터.

이미지 확대


산과 물과 길이 가장 잘 어울리는 길, 경춘선의 풍경을 배경으로 젊은이들이 속삭였을 사랑의 밀어가 북한강 물 흐름소리에 어려 있다. 그리고 긴 터널을 통과할 때마다 전력 부족으로 전등이 꺼지던 열차 안에서 사랑하는 이의 손을 맞잡던 순간의 그 가슴 두근거림이 오늘을 살아가는 리듬으로 아직 남아 있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내가 경춘선 열차를 처음 본 것은 시골에서 중학교를 나오고 춘천으로 유학을 왔을 때다. 철길 가까운 근화동에 하숙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끔 그 철롯둑 위에 놀러 나갔다. 멀리 소실점을 향해 곧바로 뻗은 철길을 걸으면서 나는 아직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서울에 대한 동경으로 가슴이 설레었다.

그런 어느 봄날 나는 그 철길 위에 앉아 꺽꺽 소리 내어 운다. 그 나이에 느낄 수 있는 열패감의 폭발이었다. 열아홉 살 나이의 그 감상은 철길 건너편 산비탈의 진달래를 본 순간 또다시 울음으로 터져 나왔다.

바로 그날 그 철길 위에서 새로운 세상과 만난다. 초등학교 2학년쯤 됐을 아이가 철길 밑 움막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게 된 것이다. 누구보다 가난 콤플렉스가 컸던 내게 철롯둑 아래 움막 속에 사는 사람들과의 만남은 새로운 세상의 발견이었다.

움막에 들어갔던 아이가 얼굴과 손에 진물이 질질 흐르는 나환자 아버지와 함께 나왔던 것이다. 나와 꽤 멀리 떨어진 철길 위에서 자기 아버지의 손에 무슨 약인가 발라주고 있는 그 아이를 본 순간 내 속에서 뭔가 굼틀거리기 시작했다. 그 참담한 상황에서 살아가는 그 아이 이야기를 글로 써보고 싶다는 충동이었다.

내가 처음으로 쓴 소설 63장 분량의 <산에 오른 아이>는 문둥병 아버지를 둔 한 아이가 진달래가 핀 산에 들어가 주머니칼을 빼든 채 잠이 들어 있는 장면을 결말로 완성된다. 그 작품이 제6회 학원문학상 고등부 소설부문에 3등 입상한다. 글 쓰는 즐거움, 작가로서의 길이 경춘선 철롯길 위에서 열린 것이다.

그 철롯길 위를 달리는 경춘선 열차를 난생 처음 탄 것은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1959년 연말 겨울이다. 경희대학교 입학원서를 사기 위한 상경, 표를 사기 위해 춘천역 광장에 줄을 섰을 때의 그 설렘이 지금도 생생하다.

내 등단작 <同行>도 경춘선 열차 속에서 발상되었다. 1961년 겨울 방학 때 춘천에 내려와 친구들과 밤 눈길을 헤매던 일을 상경하는 열차 안에서 떠올렸던 것이다. ‘그 밤 눈길을 누군가와 함께 걸어가는 이야기를 소설로 쓰자.’ 동행이란 낱말이 소설 제목으로 머릿속에 떠오르는 순간의 그 흥분이라니. 특히 함께 갈 수 없는 사람들이 부득이 함께 걸어가야 하는 그런 얘기를 소설로 만들자는 생각을 하면서 무심히 내다본 경춘선 그 건너편 산비탈의 눈밭 풍경은 정말 대단했다.

그리고 1985년 서울 탈출도 경춘선을 통해 이루어진다. 강원대 교수로 자리를 옮긴 뒤 나는 거의 10년 가까이 경춘선 열차를 타고 서울과 춘천을 오르내렸다. 서울 가는 막차와 춘천 가는 새벽 기차 속은 언제나 텅텅 비었다. 내게 그 헐렁한 기차의 규칙적인 덜커덩거림은 자장가와 다르지 않아 모자라는 잠을 채우기에 그만이었다.

이미지 확대


기차가 긴 터널을 통과할 즈음에는 어김없이 잠에서 깨어났다. 터널을 빠져 나오는 순간 펼쳐지는 경춘선 풍경은 장면 장면이 모두 새로웠다. 특히 북한강 강물 위의 물안개는 어느 때 보아도 장관이다. 아슴아슴 피어오르는 그 물안개를 바라보며 작품 구상을 했다.

중편소설 <지빠귀 둥지 속의 뻐꾸기> <섞지 아니할 씨> <투석>, 그리고 장편소설 <유정의 사랑> 등이 경춘선 열차 속에서 발상되고 그 얼개가 짜진 것들이다.

그리고 2004년 경춘선의 간이역 ‘신남역’이 우리나라 철도 역사상 처음으로 사람 이름이 들어간 ‘김유정역’으로 그 역명이 바뀌면서 30년대 작가 김유정이 사람들 입에 자주 오르내리게 된다.

이미지 확대
그리고 경춘선 열차가 내려다보이는 금병산에 작가의 작품 이름을 딴 김유정등산로가 만들어지고 다시 그 산자락에 실레이야기길 열여섯 마당이 만들어지면서 경춘선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된다.

아무튼 그 동안 경춘선은 내 문학적 상상력의 보고였고 오늘을 사는 내 걸음걸이에 딱 알맞은 속도로 아무 때고 훌쩍 떠날 수 있는 출구였으며 밖에서 방황하다가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는, 결코 헤어날 수 없는 내 인생의 링반데룽이었다.

2010년 12월, 시대의 속도에 밀려 경춘선은 사라졌지만 그 흔적은 그대로 남아 또 다른 역사를 써나가게 될 것이다. 경기도 가평부터 춘천 김유정역까지 그대로 남아 있는 구철도의 관광 자원화 계획이다. 이제 머지않아 북한강 강변 구철도 위를 달릴 관광 레일바이크와 꼬마열차가 사라진 경춘선 열차에 대한 그리움을 얼마나 달래줄는지 기대가 크다.

글_ 전상국 소설가, 김유정문학촌장

많이 본 뉴스
최저임금 차등 적용, 당신의 생각은?
내년도 최저임금 결정을 위한 심의가 5월 21일 시작된 가운데 경영계와 노동계의 공방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올해 최대 화두는 ‘업종별 최저임금 차등 적용’입니다. 경영계는 일부 업종 최저임금 차등 적용을 요구한 반면, 노동계는 차별을 조장하는 행위라며 반대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생각은?
찬성
반대
모르겠다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