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村)스러운 이야기 | 안나푸르나 라운드 트레킹] ③ 눈보라 속을 뚫고 히말라야로!

[촌(村)스러운 이야기 | 안나푸르나 라운드 트레킹] ③ 눈보라 속을 뚫고 히말라야로!

입력 2011-07-03 00:00
업데이트 2011-07-03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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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 눈만 존재한 것 같은 토롱라를 넘으니 이제는 끝도 없는 급경사의 내리막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해발 5,416m의 토롱라 고개에서 내려오는 해발 3,800m까지의 눈 덮인 급경사는 또 다른 고난이었습니다. 더구나 지금은 새벽부터 일어나 아침밥도 거르고 오직 헤드랜턴에만 의지하며 눈 덮인 길을 오르느라 이미 손가락 하나 움직이기 힘든 상황입니다. 그런데 한꺼번에 고도를 1,600m 이상이나, 더군다나 눈 때문에 미끄럽기 이를 데가 없는 급경사를 다시 내려와야 한다는 것은…. 둘레에는 살아 있는 생명 하나 없는 눈 덮인 산뿐입니다. 지칠 대로 지친 데다 배는 고프고 마실 물도 떨어졌습니다. 그래도 가장 걱정했던 과제를 넘었다는 위안으로 휘청거리는 몸을 지탱해가며 묵디나트라는 제법 큰 마을에 닿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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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디나트는 해발 3,800m에 있는 마을로 유명한 힌두사원이 있어 순례객이나 관광객이 많아 지금까지 지나온 동네들과는 달리 조금 생기가 있어 보이는 마을이었습니다. 이곳에 오는 동안 몸과 마음이 지친 우리는 첫 번째 롯지에 짐을 풀고 무조건 밥부터 시켰습니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지만 그래도 해가 머리 위로 뜨는 한낮에는 마을 안으로 잠깐이라도 볕이 듭니다. 마침 우리 눈에 햇볕에 몸을 맡기고 있는 롯지가 보였습니다. 이것저것 망설일 필요 없이 우리는 바로 그곳을 숙소로 정했습니다. 다소 누추하기는 했지만 당장 쉬고 싶은 마음에, 더구나 이렇듯 축복 같은 햇살이 내리쬐고 있으니 그만한 곳도 없다 생각이 들었습니다.

밥을 시킨 후 옥상에서 따뜻한 햇살에 온몸을 맡기자 오늘 새벽부터의 고행은 이미 과거가 되어 버렸고… 마냥 행복했습니다. 무사히 끝낸 것에 대한 안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대견함, 나를 위해 만들어지는 음식 냄새, 히말라야의 맑은 공기와 햇살까지… 불과 몇 시간 전까지 나 자신과 싸우며 숨 막히는 고도와 고꾸라질 것 같은 급경사를 지난 터라 지금의 평온함이 더 행복하게 느껴졌습니다. 나의 안내인 친구도 기분이 좋은지 그동안 쭉 먹어오던 달밧이 아닌 다른 음식을 먹어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습니다. 우리가 주문한 음식은 옥수수 국수를 케첩에 버무려 먹는 요리였는데, 아주머니 솜씨가 신통치 않았는지 썩 맛이 있지는 않았지만 모처럼 배불리 먹었습니다.

식사 후, 거리에 나가보니 순례객들과 관광객들을 위한 상점도 제법 펼쳐져 있었습니다. 그중에는 가게 앞에 베틀을 놓고 목도리나 스카프 등을 짜는 여인들도 있었습니다. 아직 시즌이 아니어서인지 거리의 사람들 대부분은 현지인들이었고, 여행객들은 간혹 눈에 띌 정도였습니다.

토롱라를 중심으로 동쪽, 그러니까 우리가 지나온 길은 오로지 토롱라를 넘을 트레커만 주로 가는 코스입니다. 반면 서쪽은 다른 여행자도 이용합니다. 우리가 지나온 동쪽은 고도가 4,500m 이상으로 둘레에 키가 작기는 하지만 나무도 자라 있었습니다. 하지만 서쪽은 3,800m에도 나무는 없고, 야크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거리를 어슬렁어슬렁거리다 보니 어느 새 해가 히말라야의 어느 봉우리 뒤로 숨었고, 그와 동시에 따사롭던 대지는 그럴 수 없다 싶게 추워져 버립니다. 사라진 것은 해뿐만이 아닙니다. 햇살 아래 한가롭게 베를 짜던 여인들의 여유로운 표정도 사라져 버리고 그 자리에는 초라하고 옹색한 산골 노파가 앉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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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땔감으로 사용할 만한 것은 모두 귀합니다. 심지어 야크똥까지… 그래서 더 춥게 느껴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참 간사합니다. 내가 축복받은 롯지라 생각했던 우리의 숙소가 사실은 온기라곤 그 어디에도 없는 초라한 롯지임을 그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너무 피곤한 탓에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단지 햇볕이 있다는 것 하나만 보고 들어온 첫 번째 롯지… 후회해도 소용없었습니다. 단지 하룻밤만 견디면 된다는 것 하나로 위안을 삼을 수밖에.

다음날 그 집을 빨리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아침밥도 생략한 채 출발을 서둘렀습니다. 하지만 글을 모르는 주인과 계산하느라 30분이나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토롱라도 넘고 이제부터는 걱정할 것 없으니 즐기는 여행을 하자 다짐합니다. 하지만 날씨는 춥고, 눈보라까지 치고, 히말라야는 도통 보이지 않으니 발길이 자연적 빨라집니다.

그러다 좀솜이라는 비행장이 있는 동네(그때는 겨울이라 비행기가 운행하지 않음)에서 잠시 멈추고 밥을 먹습니다. 히말라야에 오른 후로는 처음으로 비로소 밥다운 밥을 구경합니다. 같은 달밧이라도 지역이나 고지에 따라 차이가 많습니다. 사람이 많이 가지 않고 고도가 높아질수록 대부분 음식들이 보잘것없고 엉망입니다. 하지만 좀솜은 비행장도 있고, 비교적 관광객이 많은 지역이라 그런지 제법 그럴듯한 그릇에 치킨커리를 포함, 야채까지 곁들인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달밧이 나왔습니다. 이 정도면 현지 식만 먹고도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간만에 정말 배부르게 점심을 먹었습니다. 나의 안내인 친구가 “선생님 계속 그렇게 드시면 네팔 여자들처럼 돼요” 합니다. 요즘 네팔 여자들은 뚱뚱한 사람이 많은데 내가 달밧을 계속 그렇게 많이 먹으면 뚱뚱해질 거라는 겁니다.

토롱라를 넘은 후 날씨가 계속 흐립니다. 눈보라도 계속 이어집니다. 우리는 걷는 중간중간 서로 의미심장한 눈을 마주치며 웃습니다. 하지만 걸음은 엄청 빨라서 거의 빛의 속도라 할 만하게 걷습니다. 보통 4일정도 걸린다는 길을 우리는 그렇게 이틀 만에 뚝딱 도착했습니다. 빨리 도착하니 한결 여유롭습니다.

해발고도 1,200m까지 내려오니 세상은 별천지고, 나무에는 오렌지가 노랑빛을 띠고 매달려 있습니다. 이곳은 따또바니라는 곳으로 우리말로 하면 따뜻한 물, 즉 온천이 있는 곳이라고 해서 잔뜩 기대를 했습니다. 산행을 시작한 이후 씻지 못한 몸이 씻고 싶다 아우성을 핍니다.

며칠 동안 내가 잘 안 먹는다고 자기도 겨우 끼니만 해결한 안내인 친구에게 미안한 마음에 회식도 시켜주고, 나도 몸보신 좀 할까해서 큰마음 먹고 닭백숙을 시켰습니다. 백숙은 이리저리 하라고 주방에 시키고 기다리는 데 한 세 시간 기다렸나? 그제야 나온 백숙에는 아직도 피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가격은 내가 바가지를 쓴 것인지 엄청 비쌌지만 맛은 더없이 좋아서 기분 좋게 맥주를 곁들여 배부르게 먹었습니다.

그리고 피곤한 몸을 씻기 위해 온천으로 향했습니다. 하지만 온천이라는 곳에 가보니 그냥 노천에 달랑 사각으로 된 탕을 설치하고 물만 그득 받아놓고 네팔 남자 몇 명이서 헐렁한 팬티만 입고 한쪽에서 히죽거리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열흘이 넘게 씻지 못했지만 그 풍경을 보는 순간 씻고 싶은 마음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하는 수 없이 겨우 손만 미지근한 물에 담가보고 돌아섰습니다.

1,200m까지 내려왔다고 트레킹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다시 3,200m를 올라야 할 일이 남았습니다. 1,200m 따또바니에서 2,870m 고라파니까지의 오름길 또한 만만치 않습니다. 하지만 이미 5,400m 이상을 올라갔다 온 다음이라 별무리는 없었습니다. 가는 길 중간중간 참으로 정겨운 시골 풍경을 감상하며 천천히 올랐습니다. 하지만 날이 계속 흐려 여전히 히말라야는 볼 수 없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날이 흐리면 다음날 푼 힐에서의 일출과 히말라야 파노라마도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아무리 고소 적응이 되었다지만 1,600m 이상의 고도를 끝없이 올라가자니 힘이 들었습니다. 고라파니 롯지에 도착했을 때는 많이 지쳐 있었습니다. 롯지 여주인은 내 안내인에게 나의 일정을 들어보더니 내 등을 부드럽게 두드리면서 “수고했어요”라고 말해주었습니다. 나도 모르게 울컥했습니다. 그 롯지 여주인의 손길과 느낌에서 어머니를 느꼈습니다. 내가 고생한 것에 대한 진심 어린 찬사였습니다. 그 안에는 나에 대한 염려도 섞여 있었습니다. 히말라야의 오지의 한 롯지에서 나보다 젊은 여인의 위로에 어머니를 느꼈다는 것은 어쩌면 나도 누군가의 위로나 칭찬을 받고 싶다는 것, 아니 그것은 아니고 그 순간 어머니가 그리워서였을 것입니다.

글·사진_ 남난희 《낮은 산이 낮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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