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다녔어도, 연봉 높았어도… 경단녀 최선의 선택은 ‘집 근처’

대기업 다녔어도, 연봉 높았어도… 경단녀 최선의 선택은 ‘집 근처’

고혜지 기자
입력 2021-06-09 22:00
수정 2021-06-10 0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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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급이 된 통근-집과 바꾼 삶] (4회) 통근에 감춰진 불평등

출산 뒤 재취업하려니 긴 통근시간 부담
기혼남성 출근길 36분, 기혼여성은 16분
짧은 통근, 혜택 아닌 사회적 차별의 산물
“집 가깝다고 일도 가사도 여성 부담 2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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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김예원 기자 yean811@seoul.co.kr
그래픽 김예원 기자 yean811@seoul.co.kr
“해 왔던 일도, 하고 싶은 일도 아닌데 회사가 집이랑 가까워서 다녀요.”

직장맘 김주혜(30·가명)씨는 지난 2월 집에서 차로 20분 거리의 회사에 재취업했다. 하지만 출산 후 2년여 만의 경력단절 탈출 과정에서 여러 번 상처를 입었다.

경단녀 김씨에게 열린 일자리 자체가 많지 않았다. 육아를 병행할 수 있는 유연한 시간과 통근 시간이 짧은 조건에 맞는 건 저임금이거나 계약직뿐이었다. 경력 단절이 길어지면서 김씨는 전공과는 상관없는 곳에도 구직 지원을 했다. 결혼 전 왕복 3시간이 넘는 통근을 감내하며 쌓아 온 영양사 커리어를 포기하고 소규모 업체의 산휴 대체 계약직으로 직장 생활을 다시 시작했다.

김씨의 통근 시간은 결혼 전 3시간에서 40분으로 확연히 단축됐다. 그러나 통근 시간은 크게 줄었지만 남은 시간은 육아와 가사 활동으로 메워졌다. 김씨는 이제는 몸이 아파 병원에 가려 반차를 쓴 날까지도 시간을 쪼개 3살 난 아들을 먹이고 씻기는 데 쓴다.

김씨처럼 기혼 여성의 짧은 통근 시간은 혜택일까, 자발적 선택의 결과일까. 국내 여성 통근 시간과 관련된 연구들을 보면 남성보다 짧은 여성의 통근 시간은 사회적 차별의 산물이다. 교육 수준이 높아도 경제적·시간적 비용을 감수할 좋은 일자리를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제한적이다. 맞벌이 여성의 경우 자녀 수가 많을수록 통근 시간이 짧은 일자리로 제한된다.

서울신문 탐사기획부가 9일 지난해 서울시 도시정책지표조사 응답자 4만 85명의 출근 데이터를 추출해 분석한 결과, 기혼 남성의 평균 출근 시간은 36분으로, 기혼 여성의 16분과 크게 차이 났다. 미혼 남성과 여성의 평균 출근 시간은 각각 34분, 32분으로 큰 차이가 없었다.

직장맘 여성들은 아이에 대한 책임감, 등하원 돌보미 고용 등 부대비용에 대한 경제적 부담, 여전히 엄마를 주양육자로 보는 사회적 고정 관념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이 같은 현상이 나타난다고 봤다. 대기업 HR부서에서 일하다가 경력 단절 후 교육공무직원으로 재취업한 전모(33·여)씨는 “아이가 최우선이라는 생각에 적성, 전공, 연봉을 모두 포기하고 집 근처 계약직 일자리에서 일한다”며 “국공립·직장 어린이집이나 탄력근무제가 잘 갖춰져 있었다면 적성에 맞는 일을 포기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씨 남편의 직장에는 어린이집이 있지만 수용 인원이 적어 여사원 자녀부터 우선순위를 부여한다. 이모(33·여)씨는 “어린이집에서 호출이 오면 나는 상사 눈치가 보여도 애 엄마라고 양해를 받지만 남편들이 직장에서 ‘애 때문에 나가봐야 한다’고 말할 수 있는 분위기냐”고 했다.

김수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가부장적인 사회의 모성 이데올로기 아래에서 여성들은 직장에도 육아에도 다 전념해야 한다”며 “통근 거리가 가깝다고 좋은 게 아니라 회사 일과 가사가 중첩되면서 여성 부담이 2배가 되는 구조”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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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혜지·박재홍 기자 hjko@seoul.co.kr
2021-06-10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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