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아웅산테러 30년… 생존자 전인범 육군 소장 인터뷰
지금으로부터 꼭 30년 전인 1983년 10월 9일 오전 10시 27분 당시 미얀마 수도 양곤. 주변의 모든 소리를 빨아들이는 굉음과 함께 독립운동가 아웅산 장군 묘역의 목조건물이 한꺼번에 붕괴했다. 미얀마를 공식 방문한 전두환 당시 대통령을 노린 북한 정찰국 특수부대원들의 소행이었다.전인범 육군 소장
서석준 부총리, 이범석 외무부 장관, 김동휘 상공부 장관, 서상철 동력자원부 장관, 함병춘 대통령 비서실장 등 17명이 목숨을 잃었다. 전 대통령은 예정보다 3분 늦게 숙소에서 출발한 덕에 화를 면했다.
당시 이기백(전 국방부 장관) 합참의장의 부관(중위)으로 현장에 있던 전인범(55·육사 37기·유엔군사령부 군사정전위원회 수석대표) 소장에게도 운이 따랐다. 폭발 5분 전 카메라 건전지를 교체하러 행사장을 잠시 비운 것. 전 소장은 8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300~400m 떨어진 곳에 있었는데 굉음이 울린 순간 솔직히 혼이 다 나갔다”면서 “정신이 하나도 없고 무서웠는데 나도 모르게 현장으로 달려가고 있더라”고 당시를 떠올렸다.
현장은 아비규환 속에 시신이 나뒹굴었고, 부상자들은 신음을 내뱉으며 고통을 호소했다. 이 전 장관 역시 머리와 배에 파편이 박히고 다리가 서까래에 깔렸다. 전 소장은 “(이기백) 장관님의 두피 부분은 다 벗겨져 있었고, 의식도 가물가물했다”면서 “서둘러 후송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고 말했다.
테러범 3명 중 신기철 대위는 사살됐고, 체포된 진모 소좌는 사형을 선고받고 이듬해 처형됐다. 범행을 자백한 강민철 대위는 미얀마 교도소에서 25년간 복역하다 2008년 5월 사망했다.
전 소장은 “돌아가신 분들은 누군가의 가장이고, 사랑하는 남편이었다”면서 “북한 정권에 대해 결코 믿을 수 없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고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는 또 “안타까운 건 아웅산 테러가 점점 잊혀진다는 것”이라면서 “명백한 테러임에도 애매하게 표현하거나 실체를 오해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살아남은 사람으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면서 “이런 일이 또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없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10월 테인 세인 미얀마 대통령의 방한 등 한·미얀마 관계 개선에 힘입어 지난 3월에는 추모비 건립을 위한 민관위원회가 출범했다. 생존자인 이 전 장관은 물론, 유수경(고 서석준 부총리의 부인) 국민대 명예교수, 함재봉(고 함병춘 비서실장의 아들) 아산정책연구원장 등이 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연말까지 테러 현장에서 100m쯤 떨어진 아웅산 묘역 입구에 7억 3000만원을 들여 추모비를 세우기로 했다. 한편 9일 국립서울현충원에서는 희생자들을 기리는 추모식이 열린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2013-10-09 2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