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문사 절도범 형제의 인생유전

보문사 절도범 형제의 인생유전

입력 2011-03-29 00:00
업데이트 2011-03-29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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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은 잘나가던 학원강사, 동생은 고깃집 사장이었지만”

”동생이 자살할까 걱정됩니다. 꼭 찾아주세요.”

서울 보문사에서 조선시대 유물을 훔친 혐의로 지난 21일 서울 성북경찰서에 붙잡혀 온 박모(50)씨는 조사를 맡은 경찰관들을 앞에 두고 내내 눈물을 쏟아냈다.

애초 범행을 계획하고 주도한 자신의 동생(45)이 수사 사실을 알고는 휴대전화를 끈 채 종적을 감췄기 때문이다.

박씨가 경찰관에게 털어놓은 이야기에 따르면 그의 동생은 사업 실패로 가족들 속을 꽤 썩였다. 야심차게 차린 고깃집이 1990년대 후반 경제위기 당시 망하면서 범죄에 눈을 돌렸다.

사찰 문화재 절도범들과 우연히 알게 된 동생은 충남과 대구 등 사찰에서 유물을 훔치다 붙잡혀 1년8개월간 복역한뒤 2004년 출소했다. 이후 다시 식당을 차렸지만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고 빚을 잔뜩 떠안은 채 가족들의 도움만 받아왔다.

그러던 동생이 지난 2월 형을 찾아와 “마지막 한 번만 (절도를) 더 할 테니 제발 도와달라”고 애원했으나 박씨는 일단 뿌리쳤다. 한때 잘 나가던 학원강사로 번 돈도 동생에게 다 빌려준 터였다.

그러나 거듭 찾아와 사정하는 동생을 끝내 외면하지 못했다. 동생은 유물이 잘 보존돼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며 보문사를 범행 대상으로 삼았다.

같은 달 5일. 형제는 스님들이 새벽 수행하는 틈을 타 보문사 대웅전에 침입해 조선시대 불경인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등 유물 9점을 훔쳐 달아났다. 범행 후 동생은 불경을 비롯한 주요 유물을 갖고 형과 헤어졌다.

박씨는 불안함과 착잡함을 달래고자 발원문을 적은 종이 몇 점만 들고 평소 다니던 지방의 한 낚시터를 찾았다. 박씨는 그러나 범죄를 저질렀다는 중압감에 잠을 이루지 못하다 갖고 있던 유물 대부분을 불태운뒤 뒤쫓아온 경찰의 체포에 순순히 응했다.

집안의 골칫덩이이긴 했으나 몹시 아끼던 동생이 자취를 감췄다는 경찰의 말에 박씨는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재기를 노리다 일이 잘 풀리지 않아 잘못된 선택을 한 탓에 동생이 어떤 짓을 저지를지 모른다고 걱정이 태산이었다.

동생의 소재지를 파악하고 수사망을 좁히던 경찰은 전화를 꺼둔 동생에게 박씨를 통해 음성메시지와 문자메시지를 계속 남기며 회유했다.

잠적 중에도 수시로 휴대전화를 켜 메시지를 확인하던 동생은 결국 28일 경찰에 전화를 걸어 자수 의사를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박씨는 잡혀오고서도 내내 동생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고 경찰 수사에 적극 협조하는 등 아주 선한 면모를 보였다”며 “범행을 도와달라는 동생의 청을 뿌리치지 못한 것도 그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고 연민의 정을 나타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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