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체류자라고… 못 알아듣는다고 일당 떼이기 일쑤… ‘슬픈 조선족 짐꾼’
15일 새벽 5시 30분 서울 송파구 가락시장. 쌀쌀한 새벽바람을 뚫고 수레가 딸린 오토바이가 질주하더니 트럭 뒤에 멈췄다. 털모자에 낡은 항공점퍼를 입은 남성은 익숙한 동작으로 싣고 간 채소 상자를 트럭으로 옮겼다. 5분도 채 안 돼 수십 개의 박스가 트럭에 실렸다. 얼굴에서는 땀이 흘렀다. 가락시장을 누비는 ‘품걸이’ 이춘석(50·가명)씨다. 품걸이는 가락시장에서 출하되는 과일, 채소 등을 오토바이나 손수레로 트럭까지 실어 나르는 짐꾼이다.15일 새벽 서울 송파구 가락동 가락시장에서 한 중국동포 짐꾼, 이른바 ‘품걸이’가 손수레에 수십 개의 채소 상자를 가득 실어 옮기고 있다.
도준석기자 pado@seoul.co.kr
도준석기자 pado@seoul.co.kr
이씨는 4년 전 중국 헤이룽장성에서 왔다. 중국에 아내와 6명의 자녀를 두고 있다. 매일 오후 10시부터 다음 날 아침 7시까지 9시간 일하고 있다. 일당은 8만~10만원, 한 달에 평균 180만~200만원을 번다. 150만원을 중국의 가족에게 송금하고 있다. 나머지는 단칸방 월세와 생활비로 쓴다. 낮에는 내내 잠만 잔다. 밤낮이 바뀐 생활이 벌써 4년째다.
이씨는 “힘은 들지만 가진 게 몸뚱이뿐이라 짐 나르는 일 말고 할 수 있는 게 없다.”면서 “가족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떠올리며 버틴다.”며 미소를 지었다.
또 다른 ‘품걸이’ 이수호(48·가명)씨는 새터민이다. 6개월 전 중국 옌볜에서 왔다. 일거리를 찾아 떠돌다 가락시장에 발길이 닿았다. 청과물 가게에서 일당 8만원에 일하기로 했다. 그러나 6만원밖에 받지 못했다. 능숙하게 일을 잘 처리하지 못한다는 이유에서다.
억울했지만 차마 항변도 못 했다. 이상한 소문이라도 나면 이 바닥도 떠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후 다른 가게로 일자리를 옮겼다. “어차피 뜨내기 일용직이지만 약속한 돈이나 줬으면 좋겠다.”며 아쉬워했다.
가락시장의 품걸이는 10여년 전만 해도 대다수가 한국인이었으나 2000년대 들어 중국동포나 새터민으로 바뀌었다. 90% 이상이 중국동포 등 이주노동자들이다. 상인들은 “이들은 언제든 보따리를 쌀 수 있기 때문에 정규직으로는 채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때문에 품걸이는 현황조차 파악되지 않는다. 서울농수산물공사 관계자는 “각 상회가 야간에 개별적으로 고용해서”라고 말했다.
부당한 대우도 다반사다. “굼뜨다.”, “말귀를 못 알아듣는다.”며 거친 말을 쏟아내는가 하면 따로 근로계약을 체결하지 않아 약속한 일당을 안 주는 일도 허다하다. 노동 사각지대인 셈이다.
고용노동부 외국인력정책과 관계자는 “외국인 근로자를 채용한 사업주는 혹시 불법 체류자일까봐 신고를 꺼린다.”면서 “아직 단속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곳이 적지 않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품걸이가 없으면 가락시장은 돌아가지 않는다. 올스톱이다. 40년 가까이 채소를 중개해 온 윤모(62)씨는 “거칠고 힘든 일을 하는 그들을 따뜻하게 대하는 상인들이 늘고 있다.”면서 “불법 체류자라며 홀대만 할 게 아니라 품걸이 일 자체를 양성화해 이들이 자부심을 갖고 일하도록 해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홍인기·이영준기자 ikik@seoul.co.kr
2012-03-16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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