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짓밟히는 알바생 인권] ① 자살까지…성폭력에 울고있다
지난 20일 충남 서산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여대생 이모(23)양이 고용주에게 성폭행을 당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성희롱이나 성추행 등을 당하고도 고용 불안에 속앓이를 하는 비정규직 여성이 부지기수다. 정부 관리 감독의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의 짓밟힌 인권 실태와 대책을 세 차례에 걸쳐 짚어 본다.올봄 서울의 한 유학업체에서 청소와 사무보조 아르바이트를 했던 김모(18)양은 당시 기억을 떠올리면 치가 떨린다고 했다. 김양의 고용주였던 유학업체 사장이 상습적으로 김양을 성추행한 것이다. 성추행 강도는 김양이 주급을 받는 날 특히 심해졌다. 김양은 “지시를 내릴 때마다 가슴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허벅지를 만졌다. 또 ‘너 아직도 남자 경험이 없어?’, ‘애인 해주면 시급을 두배로 올려 줄게’ 등의 말을 서슴지 않고 꺼내 정신적으로 힘들었다.”면서 “돈 받기 전이라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 경기 일산의 한 호텔 연회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던 여고생 이모(18)양은 올여름 함께 일했던 친구 A(18)양을 지켜주지 못한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다. 술에 취한 할아버지 고객이 서빙을 하는 A양을 붙잡고 엉덩이를 두드리고 허리를 감싸 안았던 것이다. 이양은 “나랑 눈이 딱 마주쳤는데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너무 미안했다. 그 뒤로 그 친구는 더 이상 안 나왔다.”면서 “아르바이트생이라 괜히 말해서 소문이 나면 나오지 말라고 한다. 우리는 (성추행을 당해도) 말할 데가 없다.”고 전했다.
# 충남 천안에서 서빙 아르바이트를 하는 박모(22·여)씨의 경우 업주로부터 각종 성희롱을 당하고 있다. 남자 사장은 박씨와 단둘이 있게 되면 야한 농담을 하면서 “일 끝나고 밖에서 만나자.”며 괴롭힌다. 박씨는 “사장이 손님에게 술을 얻어먹은 날이면 술을 핑계로 몸을 더듬기도 했다.”면서 “하도 집적거려 사장에게 따져 사과를 받았지만 그날뿐”이라고 하소연했다.
아르바이트생의 인권이 벼랑 끝까지 몰렸다. 특히 여성은 성폭력과 성추행의 위험에 고스란히 노출돼 있다. 손님부터 고용주까지 지위와 권력을 이용해 아르바이트생에게 근무 시간 외 만남을 요구하거나 성희롱과 성폭력을 일삼는 경우도 셀 수 없이 많다. 하지만 아르바이트생은 고용 불안에 속앓이만 하는 실정이다.
한국여성노동자회에 따르면 2011년 한 해 성희롱 상담 264건 가운데 아르바이트직(시간제·계약직)의 상담 건수는 175건(66.3%)으로 전체 상담 건수의 절반이 넘었다. 이 가운데 사장 및 상사에 의한 성희롱 비율이 87.8%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김민호 충남 비정규직 지원센터 상임대표는 “업주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당했다는 아르바이트생들의 이메일과 전화가 하루 1~2건에 이른다.”면서 “업주의 성희롱 발언과 신체 접촉에 대한 괴로움을 호소하는 아르바이트생의 상담 신청도 한달에 한건 정도씩 들어오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 문제가 더 심각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성폭력 가해자가 아르바이트생의 평균 연령이 정규직에 비해 낮다는 점, 언제든지 대체 인력을 구할 수 있다는 점을 악용하기 때문이다. 마땅히 신고할 곳이 없다는 점도 문제의 심각성을 왜곡시키고 있다.
김형근 청년유니온 사무국장은 “고용주가 대부분 남성이고 사회적인 지위와 권력을 갖고 있는 강자이기 때문에 대부분 일을 그만두기 힘든 상황에 처해 있는 아르바이트생에게 횡포를 부리기 쉽다.”면서 “부당한 처우가 있어도 저항하거나 공론화시키기 어려운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성폭력 피해자인데도 상대적으로 약자인 아르바이트생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는 것이다.
이로사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 간사는 “법이나 규정을 엄정하게 적용할 필요가 있다.”면서 “고용노동부 근로감독관들의 적발도 잘 이뤄지지 않는 게 현실인데 성폭력 관련 법을 엄격히 적용해 아르바이트생들이 고용주의 부당한 요구를 당당히 거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산 이천열
명희진·배경헌·이범수기자 mhj46@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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