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재부 지난달 연구용역 발주 1갑당 500원 가량 가격 올라
담뱃값이 물가 상승폭조차 따라잡지 못해 흡연을 부추긴다는 보건 당국의 비판을 수용함과 동시에 급격한 담뱃값 인상으로 인한 물가 폭등 및 흡연자 반발도 막으려는 일종의 절충 조치다.
기획재정부는 5일 이런 내용의 ‘담배의 신규 비가격 규제 제도화 방안 연구’ 용역을 지난달 발주했다고 밝혔다. 용역 결과는 늦어도 8월이면 나온다.
담뱃값에 붙는 세금·부담금은 부가가치세를 제외하고는 모두 정액제다. 전체 담배의 98%를 차지하는 2500원짜리 담배의 경우 해마다 똑같은 담배소비세(641원)·교육세(320원)·국민건강증진기금(354원)·폐기물부담금(7원)이 붙는다. 담뱃값이 마지막으로 500원 인상된 2004년 12월 이후 9년 가까이 똑같은 세금이 붙어 왔다.
이 때문에 가격 왜곡 등의 부작용이 발생한다. 2005~2012년 전체 물가는 22.4% 오른 반면 담뱃값은 3.2% 오르는 데 그쳤다. 물가상승률을 적용하면 2500원짜리 담배는 3061원 정도가 돼야 한다. 500원가량 가격이 오르는 것이다. 물가와 담뱃값을 연동하면 이 같은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고 ‘담뱃값 4000원 인상’과 같은 급격한 주장도 막을 수 있다.
세수 확보에도 매력적이다. 지난해 국내에서 팔린 담배는 44억 6000만갑. 이를 통해 걷은 세금만 6조 9000억원이다. 담뱃세가 20%만 올라도 해마다 1조~2조원의 추가 세수가 확보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의 남성 흡연율은 40.8%다. 담뱃값이 우리나라의 6.3배인 노르웨이는 남성 흡연율이 19%다. 담뱃값을 일정 정도 높여 흡연율을 끌어내리자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정부는 신중한 태도다. 곽범국 기재부 국고국장은 “용역을 발주한 것은 담뱃값 인상과 관련해 여러 국회의원들이 법안을 발의해 이에 대한 기재부 입장을 정립하기 위함이지 물가연동제를 꼭 추진하겠다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물가나 서민생활에 미칠 영향도 충분히 따져 봐야 한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물가연동제 도입을 구체적으로 검토하거나 논의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여기에는 2004년 담뱃값 인상 때의 ‘경험’이 크게 작용한다.
당시 정부는 담뱃값 인상을 우여곡절 끝에 성사시키기는 했지만 이해 관계자들의 첨예한 대립으로 국회 법안심사소위만 다섯 번이나 여는 등 극심한 진통을 겪어야 했다.
물가연동제만으로는 해결이 안 되는 ‘조세부담 역진성’도 고민거리다. 지금은 1900원짜리 88디럭스든, 2500원짜리 레종이든, 3000원짜리 클라우드9이든 모두 같은 세금이 붙는다.
이 때문에 1900원짜리 담배의 세금 비중은 79%, 3000원짜리는 53%로 비싼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더 적은 세금을 내는 모순이 생기고 있다.
이번 용역 과제에는 ▲저발화성 담배 의무 제조 도입 ▲전자담배 관련 조항 도입 ▲‘영업정지 처분 기준’ 신설 ▲담배소매인 거리 제한 완화 등도 포함됐다.
KT&G는 수출용 담배에 한해서만 저발화성 담배를 제조하고 있다. 담배소매인 간 거리 제한은 현재 50m다. 유통업체들은 이 규제를 없애 달라고 주장하지만 외국의 100~300m보다 낮은 수준이어서 유지될 공산이 높다.
세종 김양진 기자 ky0295@seoul.co.kr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2013-05-06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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