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행 두 달 ‘가정폭력·성폭력 피해자 긴급보호센터’ 르포
범죄피해자 긴급보호센터에 상주하는 직원이 19일 상담실에서 피해자 상담을 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범죄피해자 긴급보호센터 제공
범죄피해자 긴급보호센터 제공
19일 보복 범죄 등 2차 피해를 차단하기 위해 위치와 직원의 신분까지 비밀에 부쳐진 범죄피해자 긴급보호센터를 찾았다. 지난 3월 19일 가정 폭력과 성폭력 등으로 갈 곳 없는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 문을 연 범죄피해자 긴급보호센터는 그동안 51명의 피해자가 거쳐 갔다.
김씨는 “밤에 갈 곳이 어딨겠어요. 찜질방에서 하루 자고 저녁에 몰래 들어가려고 했죠. 남편이 때리는 데는 이유가 없어요. 본성은 착한데 그놈의 술이 문제죠”라며 체념한 듯 말을 건넸다.
김씨는 3개 층으로 이뤄진 긴급보호센터의 2층 작은 방 침대에서 오랜만에 단잠을 잤다고 했다. 연둣빛 벽지와 침구가 눈에 띄었고 방 옆에는 샤워실도 갖춰져 있었다. 김씨는 “남편 귀가가 늦어지면 편히 잠을 못 자요. 술 먹고 들어와서 또 때릴까 봐요. 한밤중에 여자 혼자 찜질방에서 잔다는 것도 불안하고 무서웠는데 (긴급보호센터가 있어) 참 고맙죠”라고 말했다.
라면으로 허기를 채운 김씨는 1층 상담실로 내려가 3시간 넘게 센터 직원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센터에는 30~50대의 여성 상담요원 5명이 상주해 피해자들의 상담을 도맡고 있다. 보통 2~3시간 상담이 이뤄지지만 아침 해가 뜰 때까지 하소연을 하는 피해자들도 많다고 했다.
김씨는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지만 안전하게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어서 마음이 정말 편해졌어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조언을 많이 받았습니다”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상담실을 나선 김씨의 표정은 훨씬 편안해 보였다. 24시간 입소 규정에 따라 김씨는 집으로 돌아갈지 장기 시설을 찾을지 고민 중이라고 했다. 또래 직원과 늦은 점심을 하며 김씨는 가까스로 웃음을 보였다. 햇반과 통조림 반찬이 전부였지만 김씨는 “오랜만에 누군가에게 호의를 느꼈다”고 했다. 범죄피해자 긴급보호센터는 따로 배정된 예산이 없어 여기저기에서 아껴 모은 돈으로 운영된다.
천양순 센터장은 “오랫동안 가정 폭력에 노출된 피해자들은 신고를 해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고 느끼는 경우가 많다”면서 “심적으로 불안한 피해자를 안정시키는 일을 최우선순위에 두고 있다. 이후 상담을 통해 가정 복귀나 법적인 절차, 연계 시설 등을 안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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