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자 진술 외에 직접증거 거의 없어
경찰이 인천 모자 살인사건의 피의자 정모(29)씨를 1일 구속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함으로써 이번 사건과 관련한 경찰 수사가 일단락됐다.경찰은 자칫 ‘시신 없는 살인사건’이 될 뻔한 상황에서 피의자 정모(29)씨와 아내 김모(29)씨의 심경 변화를 유도, 시신 2구를 모두 찾고 정씨를 법의 심판대 앞에 서게 했다.
수사본부 구성 후 끈질기게 관련 증거를 모으고 60여 명의 강력 형사가 추석 연휴까지 반납하며 수사에 전력을 기울인 결과다.
그러나 막바지 수사가 아내 김씨의 자살로 정씨의 진술에 의존할 수밖에 없던 점, 범행도구 등 직접증거를 거의 찾지 못한 점 등은 이번 수사의 한계로 거론되고 있다.
경찰은 지난 8월 20일 연합뉴스의 단독 보도로 세간의 이목을 끌게 된 이번 사건과 관련, 수사 초기부터 정씨를 용의자로 보고 수사를 진행했다.
경찰은 정씨가 어머니와 형의 실종 다음 날인 지난 8월 14일 형의 승용차를 몰고 강원도 정선 등지를 다녀온 사실을 확인하고 정씨를 집중 추궁했다.
정씨는 그러나 고속도로통행권에서 본인의 지문이 발견됐음에도 경찰이 조작한 것이라며 범행을 극구 부인했다.
경찰은 지난 8월 22일 정씨를 긴급체포했지만 직접증거가 충분치 않다는 검찰의 석방지휘에 따라 체포 16시간 만에 정씨를 석방했다. 당시 유력한 용의자를 석방토록 한 검찰 방침에 비난 여론이 일기도 했지만 정씨가 강원도에 다녀왔다는 증거만으로는 모자 살해 혐의를 입증할 수 없다는 판단에 따른 불가피한 조치였다.
한 달 넘게 표류하던 경찰 수사는 정씨의 아내가 시신 유기 당시 남편과 동행했다며 시신 유기장소를 지목, 지난달 23일 정씨 어머니 시신을 찾으면서 급물살을 탔다.
정씨도 어머니 시신이 발견된 다음 날 결국 범행을 자백하고 형의 시신 유기장소를 경찰에 털어놓았다.
범행의 전모가 수면 위로 드러나려던 순간 예상치 못한 변수가 발생했다. 공범으로 지목됐던 정씨의 아내 김씨가 결백을 주장하며 지난달 26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
경찰은 김씨가 남편과 범행을 공모했다는 수사결과에 확신을 지니고 있지만 김씨의 죽음으로 김씨의 정확한 범행 가담 정도는 풀리지 않는 미제로 남게 됐다.
이번 사건은 정씨의 자백 외에는 경찰이 확보한 직접증거가 거의 없다는 점에서 ‘낙지사건’과 닮았다.
낙지사건은 2010년 4월 김모(32)씨가 낙지를 함께 먹다가 여자친구를 질식시켜 숨지게 했다는 혐의로 기소됐다가 최종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사건이다.
대법원은 제출된 간접증거만으로는 피고인이 고인을 질식하게 했다는 공소사실을 인정하기에 부족하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공교롭게도 낙지사건과 모자 살인사건은 모두 인천 남부경찰서가 수사를 맡아 진행했다.
남부서는 낙지사건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직접증거를 모으는 데 전력을 다했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범행에 사용된 흉기, 살해 장소 혈흔, 시신 유기 당시 사용된 차량의 블랙박스 장치, 내비게이션 메모리카드 등 정씨의 범행을 입증할만한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다. 김씨 시신 유기장소에서 발견한 밧줄 정도가 그나마 경찰이 확보한 정씨의 범행도구다.
이 때문에 만일 정씨가 재판 과정에서 ‘경찰의 강압수사에 못 이겨 자백했다’며 진술을 번복한다면 치열한 법정공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정씨는 국가인권위원회에 ‘경찰 조사에서 인권을 침해당했다’며 진정을 냈다가 취하하기도 했다.
경찰은 그러나 시종일관 무죄를 주장한 낙지사건 피고인과 달리 정씨는 범행사실을 자백하고 현장 검증에서도 범행 수법을 구체적으로 재연했다며 행여 진술을 번복하더라도 신빙성을 얻기 어려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앞으로 최대 20일간 진행될 검찰 수사에서 합리적 의심을 허용하지 않을 정도의 증거가 확보돼 잔혹한 존속살해 용의자에게 법의 준엄한 심판이 내려질지 귀추가 주목된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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