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쌀 고추장, 고춧가루는 중국산

우리 쌀 고추장, 고춧가루는 중국산

이하영 기자
입력 2018-06-17 22:24
수정 2018-06-18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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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산 명태→ 용대리 황태 등
가공지로 제품명 ‘꼼수 작명’
관련 규정 없어 소비자만 혼란

강원도 휴가지에서 ‘용대리 황태’를 구입한 주모(27)씨는 뒤늦게 원산지 표기를 확인하곤 분통이 터졌다. 황태마을로 유명한 지역 이름을 앞세운 제품명과는 달리 황태의 원산지는 ‘중국산’이었다. 주씨는 “포장지에 쓰여 있는 내용만 철석같이 믿고 당연히 국내산으로 생각했다”면서 “속은 것 같아 기분이 나빴다”고 말했다.

주부 안모(50)씨도 오랫동안 애용하던 국내산 기름 제품의 원산지를 최근에 확인하곤 충격에 빠졌다. 안씨는 “국내에서 만들었다기에 당연히 국내 콩으로 만든 것인 줄 알았는데, 국내 공장에서 가공만 했다니 배신감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시중에 판매하는 식품에 외국 원산지 대신 국내 가공지 등을 제품명으로 달아 소비자를 헷갈리게 하는 ‘꼼수’가 판치고 있다. 소비자가 포장지에 적힌 제품명을 통해 직관적으로 제품을 파악하는 것을 이용해 마치 외국산도 국내산인 것처럼 둔갑시킨 것이다. 허술한 현행 원산지 표기법을 대대적으로 수정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7일 서울신문이 대형마트와 온라인 쇼핑몰 등 10여곳을 분석한 결과, 특히 수산물을 말린 포류나 양념류에서 이런 혼동을 주는 제품명이 다수 발견됐다. 한국에서 사실상 씨가 말랐다는 명태는 버젓이 ‘중국산을 섞지 않은 순수 용대리 자연건조 황태채’, ‘강원도 고성 씹을수록 고소한 먹태’ 같은 이름의 가공식품으로 대량 판매되고 있었다.
강원 인제군 용대리는 우리나라 최대의 황태 생산지이다. 사진은 실용대리 황태 덕장에서 건조 작업을 앞두고 있는 명태.
강원 인제군 용대리는 우리나라 최대의 황태 생산지이다. 사진은 실용대리 황태 덕장에서 건조 작업을 앞두고 있는 명태.
대형 온라인 쇼핑몰 L몰에 입점한 명태 가공식품 17개 제품 중 9개, H몰에서는 3개 제품 중 2개, E몰에서는 13개 제품 중 6개가 ‘가공지’를 ‘제품명’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시판 명태 제품 절반 이상이 이런 꼼수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양념류 제품에도 이런 꼼수는 만연했다. ‘콩 100%로 국내에서 직접 만든 콩기름’은 미국·브라질·파라과이 콩 100%를 국내 공장에서 가공한 기름이었다. ‘우리 쌀로 만든 태양초 고추장’도 쌀은 국내산이었지만, 고추 양념과 고춧가루는 중국산이었다.
시중에 판매하는 식품에 외국 원산지 대신 국내 가공지 등을 제품명으로 달아 소비자를 헷갈리게 하는 ‘꼼수’가 판치고 있다. 사진은 외국산 콩 100%를 국내에서 가공한 기름 제품. 류재민 기자 phoem@seoul.co.kr
시중에 판매하는 식품에 외국 원산지 대신 국내 가공지 등을 제품명으로 달아 소비자를 헷갈리게 하는 ‘꼼수’가 판치고 있다. 사진은 외국산 콩 100%를 국내에서 가공한 기름 제품. 류재민 기자 phoem@seoul.co.kr
그러나 관련법에는 명확한 규정이 없어 이런 꼼수를 제재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농수산물의 원산지 표시에 관한 법률’ 제6조는 ‘원산지 표시를 거짓으로 하거나 이를 혼동하게 할 우려가 있는 표시를 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거짓이 아닌 애매한 편법으로 원산지를 헷갈리게 하는 경우는 딱히 문제 삼기 힘들다는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부실하게 운영되는 현행 원산지 표기법에 대폭 변화가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이승신 건국대 소비자정보학과 교수는 “원산지 표기법을 시행한 지 수년이 지났지만, 정부가 여력이 없어 사실상 소비자단체에 감시를 맡긴 모양새”라면서 “이런 시스템 때문에 업계가 해이해진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윤철한 경실련 소비자정의센터 국장은 “업체가 불법을 자행한다고 보기에 앞서 법제도부터가 모호하고 추상적인 내용이 많아 엉터리”라면서 “원산지에 관련한 법 제도 자체를 꼼꼼하게 손봐 소비자 인식차와 실제 표기의 격차를 줄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하영 기자 hiyoung@seoul.co.kr
신형철 기자 hsdori@seoul.co.kr
2018-06-18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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