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그쪽 변호사가 사과하지 말라고 했을 겁니다. 괜히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 나중에 불리해질 수도 있으니까요.”
사고 당일 무릎을 꿇고 사죄하던 의사는 막상 소송을 하겠다고 하자 태도가 180도로 바뀌었다. 내 눈에는 명백히 보이는 과실이 저들에겐 보이지 않는 걸까. 필자의 의료 소송을 맡은 변호사는 이렇게 말하며 신경 쓰지 말라고 했지만, 뻣뻣하게 돌변한 의사의 모습은 두고두고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두 달 전쯤 한 점심 자리에서도 비슷한 얘기를 들었다. 법조인들은 기본적으로 사과에 인색하다는 말이었다. 이들은 법적으로 문제가 있는지를 판단의 근거로 삼는다. 괜히 말로 잘못을 인정했다가 나중에 법정에서 불리하게 작용해 패소하거나 유죄를 받을 수도 있다. 법적 문제가 없다면 사과할 이유도 없다는 게 율사들의 기본 인식이다.
대통령이 법조인 출신이기 때문일까, 더 정확히 말하면 불과 몇 년 전까지 인생 대부분을 법과 함께 살아온 검사 출신으로 법률가의 때가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일까.
대통령은 늘 법과 원칙을 강조하고, 대통령실 역시 짧은 ‘한 줄짜리’ 인사 알림까지 사안마다 법적 문제가 있는지부터 꼼꼼하게 따진다.
취임 첫해 있었던 대통령 전용기 민간인 탑승 논란 때는 내부 대책회의에서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말이 가장 먼저 나왔다고 한다. 당시 율사 출신 대통령실 인사들의 판단이었다. 반대로 어떻게 해명해야 할지 난감해하는 참모에게는 “이것을 문제라고 생각하는 당신이 문제”라는 핀잔이 돌아왔다. 그런데 그다음 ‘스텝’부터 문제가 꼬인다. ‘민간인이 아닌 기타 수행원으로 간 것이다’, ‘우리가 그분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등등 구구절절 해명은 길어지고, 오히려 논란은 확산됐다.
현 정부에서 논란이 된 다른 사안들도 대부분 이런 식으로 흘러가며 사태가 커졌다.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수수 의혹도,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의 주호주대사 임명도 내부 검토에선 법적으로 문제 될 게 없는 사안들이었다. 법적으로 문제가 없으니 대통령이 사과하거나 유감 표명할 이유도 없었다.
그러는 사이 여론은 악화하고 국정 지지율은 오르다가도 늘 다시 정체했다. 뒤늦게 여론을 수용해도 그 역시 마지못해 등 떠밀린 것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세우습의’(細雨濕衣)라고 했던가. 이런 일이 반복되며 불통과 고집, 사과에 인색한 이미지로 더 굳어졌다.
그리고 어느새 총선까지 불과 열흘도 남지 않게 됐다. 작금의 총선 앞 위기론이 가장 아프게 느껴질 사람은 단연 대통령일 수밖에 없다. 선거는 여당이 치르지만, 총선에 가장 큰 이해관계가 걸린 사람은 정권의 명운을 홀로 짊어진 대통령 단 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법은 도덕의 최소한이라고 했던가. 모든 일을 법의 잣대로만 따진다면 그곳은 삭막한 법정과 무엇이 다를까. ‘우리는 법적으로 문제없다’는 자신감이 국민에게는 도통 고개를 숙일 줄 모르는 ‘뻣뻣한 태도’로 보이지는 않았을까. 권력이 받들고 살펴야 할 민심은 법보다 위에 있다. 민심이 한발 물러서라 하면 물러서고, 고개를 숙이라고 하면 숙였으면 좋겠다. 법적으로 문제가 없더라도.
안석 정치부 차장
사고 당일 무릎을 꿇고 사죄하던 의사는 막상 소송을 하겠다고 하자 태도가 180도로 바뀌었다. 내 눈에는 명백히 보이는 과실이 저들에겐 보이지 않는 걸까. 필자의 의료 소송을 맡은 변호사는 이렇게 말하며 신경 쓰지 말라고 했지만, 뻣뻣하게 돌변한 의사의 모습은 두고두고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두 달 전쯤 한 점심 자리에서도 비슷한 얘기를 들었다. 법조인들은 기본적으로 사과에 인색하다는 말이었다. 이들은 법적으로 문제가 있는지를 판단의 근거로 삼는다. 괜히 말로 잘못을 인정했다가 나중에 법정에서 불리하게 작용해 패소하거나 유죄를 받을 수도 있다. 법적 문제가 없다면 사과할 이유도 없다는 게 율사들의 기본 인식이다.
대통령이 법조인 출신이기 때문일까, 더 정확히 말하면 불과 몇 년 전까지 인생 대부분을 법과 함께 살아온 검사 출신으로 법률가의 때가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일까.
대통령은 늘 법과 원칙을 강조하고, 대통령실 역시 짧은 ‘한 줄짜리’ 인사 알림까지 사안마다 법적 문제가 있는지부터 꼼꼼하게 따진다.
취임 첫해 있었던 대통령 전용기 민간인 탑승 논란 때는 내부 대책회의에서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말이 가장 먼저 나왔다고 한다. 당시 율사 출신 대통령실 인사들의 판단이었다. 반대로 어떻게 해명해야 할지 난감해하는 참모에게는 “이것을 문제라고 생각하는 당신이 문제”라는 핀잔이 돌아왔다. 그런데 그다음 ‘스텝’부터 문제가 꼬인다. ‘민간인이 아닌 기타 수행원으로 간 것이다’, ‘우리가 그분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등등 구구절절 해명은 길어지고, 오히려 논란은 확산됐다.
현 정부에서 논란이 된 다른 사안들도 대부분 이런 식으로 흘러가며 사태가 커졌다.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수수 의혹도,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의 주호주대사 임명도 내부 검토에선 법적으로 문제 될 게 없는 사안들이었다. 법적으로 문제가 없으니 대통령이 사과하거나 유감 표명할 이유도 없었다.
그러는 사이 여론은 악화하고 국정 지지율은 오르다가도 늘 다시 정체했다. 뒤늦게 여론을 수용해도 그 역시 마지못해 등 떠밀린 것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세우습의’(細雨濕衣)라고 했던가. 이런 일이 반복되며 불통과 고집, 사과에 인색한 이미지로 더 굳어졌다.
그리고 어느새 총선까지 불과 열흘도 남지 않게 됐다. 작금의 총선 앞 위기론이 가장 아프게 느껴질 사람은 단연 대통령일 수밖에 없다. 선거는 여당이 치르지만, 총선에 가장 큰 이해관계가 걸린 사람은 정권의 명운을 홀로 짊어진 대통령 단 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법은 도덕의 최소한이라고 했던가. 모든 일을 법의 잣대로만 따진다면 그곳은 삭막한 법정과 무엇이 다를까. ‘우리는 법적으로 문제없다’는 자신감이 국민에게는 도통 고개를 숙일 줄 모르는 ‘뻣뻣한 태도’로 보이지는 않았을까. 권력이 받들고 살펴야 할 민심은 법보다 위에 있다. 민심이 한발 물러서라 하면 물러서고, 고개를 숙이라고 하면 숙였으면 좋겠다. 법적으로 문제가 없더라도.
안석 정치부 차장
안석 정치부 차장
2024-04-02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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