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원 정치부 기자
내년에 의무복무 기간을 마치는 A대위는 최근 전역을 고민하고 있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장교로 임관해 장기복무에 선발됐지만 ‘나라를 지키는 보람이 없다’는 게 주된 이유다. 군인으로서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실전은 경험해 본 적이 없고 자잘한 행정 업무만 그를 괴롭힌다. 처음 군인을 선택하던 때의 막연한 사명감은 희미해졌다. 가끔 자신이 회사원인지 군인인지 헷갈린다. 그는 “나처럼 갈림길에 선 친구들이 많이 고민하는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군의 인력 유출은 육해공군을 통틀어 심각한 수준이다. 특히 가장 고된 직책 중 하나인 해군 잠수함 승조원의 유출은 오래전부터 제기된 문제지만 좀처럼 해결되지 않고 있다.
해군 잠수함 승조원들이 장보고급 잠수함 ‘이억기함’ 내부의 좁은 공간에 모여 식사를 하고 있다.
해군 제공
해군 제공
이들 대부분은 정신적 고통을 호소한다. 국방부의 ‘잠수함 및 수상함 승조원 생활여건 비교’ 자료를 보면 잠수함 승조원의 1인당 거주 공간은 평균 3.8㎡다. 20.7㎡인 수상함 승조원들에 비해 5분의1 이하로 협소하다. 심지어 화장실 이용도 벅차다. 수상함 근무자의 좌변기당 사용 인원은 평균 6명인 데 비해 잠수함은 16.7명이다. 게다가 침대 또한 1인당 1개꼴도 되지 못한다. 기본적인 의식주 제공이 전혀 이뤄지지 않는 것이다.
국방부는 “잠항 기간이 1회 20일 내외로 길고, 잠수함의 특성에 따른 열악한 근무 환경 탓에 승조원 유출률이 높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동안 수당을 인상하는 등 특단의 대책을 내놓았지만 상황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고 있다.
우스운 상황도 펼쳐진다. 잠수함 출동수당은 작전 시 일 1만원을 지급한다. 그런데 국방부는 내년도 예산안에서 관련 예산을 지난해 대비 4.4% 삭감했다. 인력 유출이 반복되면서 예산을 깎아도 기존대로 수당 지급이 가능한 것이다.
인력의 ‘구멍’은 부대의 기간(基幹)이라고 할 수 있는 부사관에서 도드라진다. 국방부의 ‘연도별 장교 및 부사관 운영률’을 보면 2017~2019년 장교의 평균 운영률은 98.3%인 반면 부사관의 경우 같은 기간 평균 운영률이 90.1%다. 특히 부사관 말단 계급인 하사의 운영률 평균은 76% 수준에 그친다. 군은 100명의 하사를 필요로 하지만 76명의 청년만이 부사관의 길을 고수하는 것이다.
사이버전 분야도 예외는 아니다. 군이 공들여 양성한 사이버 전문 인력도 총 78명 중 단 5명만이 장기복무를 희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 인력의 부재가 심각한 문제로 떠오른 것이다.
인력이 부족하면 작전이나 부대 운영에 영향을 미친다. 여전히 긴장이 조성된 전방이나 해·강안 부대 지휘관들도 “사람이 없다”는 푸념을 늘어놓는다. 일부 능력 있는 간부들을 ‘이중 보직’시키거나 공석으로 놔두고 부대를 운영한다.
근무 여건 외에 진급 문제도 인력 유출을 부추긴다. 이들은 직업군인이 되기 위해 상당 기간을 투자했지만 다수는 장기복무자로 선발될 수 없다. 장기복무나 진급이 안 되면 숙련된 간부의 유출은 당연한 수순이다. 국방부는 국방개혁 2.0의 일환으로 중간 간부의 비율을 늘리는 항아리형 구조로 재편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가 바뀌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A대위는 “‘일을 위한 일’을 억지로 만들어 보여 주기식 성과를 강조하는 문화부터 없어져야 한다”며 “정책부서에서 장병들이 군복의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업무를 고안하면 인력 유출도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고 호소했다.
2020-11-09 2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