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vie | 하재봉의 영화읽기] 워터 포 엘리펀트

[Movie | 하재봉의 영화읽기] 워터 포 엘리펀트

입력 2011-07-03 00:00
업데이트 2011-07-03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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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의 미국은 금주법과 대공황으로 상징되는 고난의 시대였다. 30년대를 배경으로 한 모든 할리우드 영화들은 고난의 시절을 떠올림으로써 현재의 풍요에 대한 안정감을 희구하고자 하는 욕망이 숨겨져 있다. <워터 포 엘리펀트>는 2006년 출간되어 12주 동안 뉴욕타임즈 베스트셀러로 기록된 새러 그루언의 소설을 영화화 한 것이다. 영화는 각색 과정에서 많은 축소와 변형을 가져왔는데, 원작이 400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이어서, 서커스단의 사소한 에피소드들이 많이 생략된 대신에 서커스단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로맨스는 더욱 강화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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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구성은 <타이타닉>처럼, 과거를 배경으로 하는 할리우드 블럭버스터의 전형적인 형식을 따른다. 도입부는 현재에서 시작해서 곧 이야기의 본론인 1930년대로 이동하여 이야기가 펼쳐진 뒤 마무리 부분에서 다시 현재로 돌아오는 방식이다. 영화는 도입부부터 전형적인 회고담 형식을 따른다. 다시 창단된 벤지니 서커스단의 공연이 끝나고 문 닫을 시간, 주차장에 서 있는 늙은 할아버지를 사무실로 안내한 직원은 할아버지를 통해 1931년 이 서커스단 전성기 시절의 이야기를 듣는다.

수의학과 청년 제이콥(로버트 패틴슨)은 코넬대학 수의학과 졸업반이다. 졸업시험을 치르는 그 순간, 그는 부모님의 갑작스런 사고 소식을 듣는다. 부모님이 남겨준 유산이 모두 은행빚으로 넘어가자 혼자 남은 제이콥은 학교를 떠나 방랑생활을 한다. 우연히 올라탄 기차에서 그는 벤지니 서커스단을 만나게 되고 동물에 대한 해박한 지식 덕분에, 서커스단 수의사로 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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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중심축은 제이콥과 서커스단장 어거스트(크리스토프 왈츠)의 아내이며, 말과 곡예를 펼치는 이 서커스단의 스타인 말레나(리즈 위더스푼)의 러브 라인이다. 두 사람의 멜로가 이루어지는 데는 어거스트라는 장애물이 있다. 어거스트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서커스단의 모든 것을 통제한다. 또 아내에게는 폭력을 휘두른다. 두 사람의 사랑이 이루어지기 위한 정당방위, 즉 어거스트의 만행이 강조될수록 두 사람의 사랑이 이루져야 하는 정당성은 증대된다. 어거스트는 대공황으로 쇠락해 가는 서커스단을 부흥시키기 위해 말 대신 코끼리를 구입하여 제이콥을 코끼리 조련사로, 말레나를 코끼리와의 곡예사로 육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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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비리와 부조리가 가득한 서커스단 내부의 복잡한 사정과 다양한 캐릭터는 원작에서만큼 영화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축소된 세계인 서커스단을 완전하게 장악하며 거대한 권력을 휘두르고 있는 단장 어거스트의 폭력성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몇 가지 에피소드들이 등장한다. 월급을 주지 않으려고 달리는 기차 밖으로 몇몇 서커스단원들을 밀어뜨려 버린다든가, 단장의 눈 밖에 난 단원들이 어느 날 갑자기 행방불명되는 상황은, 풋내기 대학생 출신 제이콥에게 위악적 세계의 어두운 모습을 보여주는 데 충분하다.

화려한 묘기가 펼쳐지는 서커스단 내부의 사랑은, 위험한 동물들과 거친 서커스단을 배경으로 더욱 애틋하고 절실한 감성적 분위기를 연출한다. <나는 전설이다>의 프랜시스 로렌스 감독은 원작이 갖고 있는 복고적 분위기와 위험한 사랑이라는 코드를 충실하게 살려낸다. 상처 받은 여인 말레나 역의 리즈 위더스푼은 트랜드를 따라갔던 그동안의 이미지에서 탈피하여 연약하면서도 자신의 사랑을 추구하는 강렬한 캐릭터로 재탄생했다. 구슬장식이 된 이브닝 드레스와 고풍스러운 빈티지 의상 여러 벌을 모아서 만들어 깃털로 장식한 퍼레이드 의상을 입고 등장하는 리즈 위더스푼은, 영화 <앙코르>로 아카데미 여우 주연상을 수상한 관록으로 <워터 포 엘리펀트>에서는 ‘벤지니 서커스단’의 최고의 스타이자 단장의 아름다운 아내 말레나 역을 맡았다. 그녀는 폭군 같은 남편의 그늘 속에서 희생당하지만, 결국 강인한 정신력으로 그것을 이겨내는 역할을 감성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은 <트와일라잇>의 뱀파이어 에드워드 역으로 신세대 스타로 떠오른 로버트 패틴슨이다. 인생의 예기치 못한 소용돌이에서 험난한 과정을 거쳐 진정한 인간으로 거듭나는 제이콥의 역할을, 로버트 패틴슨은 감성적이면서도 로맨스의 주인공다운 판타지를 뛰어나게 보여준다. 그는 코넬대학 중퇴생이라는 지적인 이력으로 동물들이 우글대는 서커스단에서 단연 돋보이는 존재가 된다. 이미 다른 남자와 결혼한 유부녀와의 사랑이 불륜으로 보여지지 않으려면, 그 결혼생활이 불행하다는 것을, 그리고 그녀가 결혼생활의 잘못된 희생자라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서커스단장인 어거스트의 만행이 증대될수록, 두 사람의 사랑은 더욱 애틋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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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장의 방에서 이루어진 세 사람만의 파티에서, 어거스트가 술에 곯아떨어진 뒤에도 제이콥을 향한 자신의 마음을 숨긴 채 아슬아슬하게 남녀관계의 선을 넘지 않는 말레나의 모습은, 멜러 영화의 순애보적 여주인공의 전형적인 모습을 따르고 있다.

<콘스탄틴>으로 데뷔해 <나는 전설이다>를 거치면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시스템에 적응한 프랜시스 로렌스 감독은 “1930년대 서커스는 증기열차, 아름답고 거대한 천막, 우아한 곡예사, 이국적인 동물들이 등장하는 마법 같은 면이 있다”라면서, 서커스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던 1930년대를 배경으로 한 <워터 포 엘리펀트>의 위험한 사랑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서커스단은 15량짜리 열차를 운행하며, 서커스 단원만 200여명에 이르는 거대한 집단이다. 이들은 800여 명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는 초대형 천막 무대를 펼치고 공연을 한다. 영화 속에는 이외에도 서커스단원들이 머무는 수십 개의 대형 천막과 100여 마리의 동물들이 등장한다. 맹수들과 함께 위험한 묘기를 펼치는 서커스단이라는 소재는 위험한 사랑이라는 주제와 함께 맞물려 시너지 효과를 가져온다.

<워터 포 엘리펀트>는 거대예산이 투입된 블럭버스터의 상업적 공식 안에서, 금지되고 위험한 사랑이라는 흐름을 놓치지 않고 대중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글_ 하재봉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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