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기 떴을 때,구출작전 때 총알받이로 내몰려”

“헬기 떴을 때,구출작전 때 총알받이로 내몰려”

입력 2011-02-06 00:00
업데이트 2011-02-06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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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원 진술로 재구성한 피랍·구출 상황

 “해적이 배에 탔다는 1항사 말을 듣고 조난신호를 보내고 선내방송을 한 뒤 정신없이 대피소로 뛰었다.”

삼호주얼리호 3등 항해사인 최진경(25)씨는 피랍 당시 상황을 떠올린 뒤 이렇게 말하고 괴로운 듯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최씨와 1등 항해사 이기용(46),갑판장 김두찬(61),기관장 정만기(58),조리장 정상현(57)씨가 남해지방해양경찰청 수사본부에서 밝힌 진술내용을 바탕으로 피랍·구출 상황을 재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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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달 15일 오전 7시45분께 배의 가장 높은 부분인 선교(船橋)에서 당직근무 중이던 1항사 이씨가 해적이 삼호주얼리호 중앙부분에 사다리를 놓고 배에 오르는 장면을 목격했다.곧바로 비상벨을 울렸다.비상벨 소리를 들은 3항사 최씨는 이씨에게서 “해적이 배에 탔다”는 말을 들었다.곧바로 선내 방송으로 ‘해적에 배에 탔으니 대피하라’고 알리고 VHF로 조난신호를 보냈다.

 한국인 선원 8명을 포함한 선원 21명이 5분도 안돼 피난실로 모여 출입문을 잠갔다.비상통신기로 선사 등지에 긴급 구조요청을 했다.대피소로 이동하고 1시간 정도 흐른 뒤 해적들이 삼호주얼리호에 올라 배를 수색하기 시작했다.

 귀가 찢어질 듯한 총성이 이어졌다.해적들이 배를 수색하면서 총을 난사한 것이다.대피 후 3시간이 지났을 무렵 해적들이 해머를 이용,대피소 천장에 있는 맨홀커버를 부수고 침입했다.해적들은 총과 중국제로 보이는 칼로 우리를 위협,선교쪽으로 끌고 갔다.

 이후 선교에서 해적 13명이 선원 21명을 감시하면서 함께 생활했다.해적들은 다른 해적이나 해적본부와 수시로 연락하며 지시를 받는 듯 했다.한국인 선원 8명이 타고 있다는 얘길 듣더니 “머니,머니”라고 외치며 박수를 쳐댔다.

 흉기와 총을 이용한 위협속에서도 석해균 선장은 갑판장 김씨에게 ‘소말리아로 가면 안된다.시간을 끌어야 한다.물과 기름을 섞어라.지그재그로 배를 운항해 시간을 끌어라’는 내용의 쪽지를 보냈다.이 쪽지는 기관실 근무자들에게 전달됐다.

 지난달 18일 청해부대의 1차 구출작전 때는 물론 그 이전에도 해적들은 우리들을 총알받이로 썼다.해군 헬기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1차 구출작전 뒤 해적들은 더 난폭해졌다.석 선장과 갑판장 김씨를 소총 개머리판 등으로 자주 폭행했다.석 선장이 가장 많이 맞았고 갑판장 김씨는 해적 팔꿈치에 맞아 앞니가 모두 빠졌다.

 ‘아덴만 여명 작전’이 시작된 지난달 21일 오전 4시58분(현지시각) 날카로운 총성이 들렸고 배 곳곳에 총탄이 날아와 박혔다.해적들은 총알받이로 쓰기 위해 선원들을 선교 바깥 쪽으로 내보냈다.선원들은 바닥에 엎드렸다.그 틈에 손재호 1등 기관사가 기관실로 뛰어 내려가 엔진을 정지시켰다.

 마호메드 아라이가 ‘캡틴!’이라고 소리를 지르며 이곳저곳을 뒤졌다.석 선장과 함께 이불을 뒤집어 쓰고 있던 갑판장 김씨의 머리채를 잡아 얼굴을 확인한 뒤 석 선장이 아닌 것을 알고 내팽개쳤다.아라이는 옆에 있던 석 선장에게 총을 쏜 뒤 선박 아래쪽으로 달아났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해군들이 들어와 “대한민국 해군입니다.안심하십시오.”라고 말했다.‘이젠 살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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