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비아 탈출 한국인 9명 숨막힌 48시간

리비아 탈출 한국인 9명 숨막힌 48시간

입력 2011-02-23 00:00
업데이트 2011-02-23 0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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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비아 동부의 도시 토부룩에서는 시위대가 관공서 5곳을 다이너마이트로 폭파하는 등 전시 상태와 다름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리비아의 반정부 시위대가 장악한 제2의 도시 벵가지로부터 동쪽으로 500㎞ 떨어진 지중해 연안도시 토부룩에서 탈출을 시도한 지 48시간 만에 이집트로 빠져나오는 데 성공한 ‘공간(Space)’ 그룹의 이동희(57) 지사장은 22일 연합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급박했던 리비아 현지의 소식을 생생하게 전했다.

이 지사장을 비롯한 공간 그룹의 직원 9명은 토부룩 지역에서 리비아 주택공사 ‘HIB’가 발주한 도시기반공사의 감리ㆍ감독 업무를 수행해오다가 최근 시위 사태가 격화되면서 폭도들이 공사현장을 습격하는 등 치안이 불안해지자 지난 20일 오전 리비아 탈출 길에 올랐다.

발주처로부터 “신변을 보장해줄 수 없다”는 말을 듣고 탈출을 결행하기로 한 이들 9명은 벵가지 공항이 폐쇄된 점을 감안, 수도 트리폴리까지 육로로 이동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9인승 밴 승합차를 대절해 길을 나섰다.

하지만, 서쪽으로 5시간을 달려 중간 기착지인 아즈다비아에 도착해보니 트리폴리로 향하는 길이 끊겼다는 암울한 소식을 접했고, 이에 따라 이튿날 길을 거슬러 토부룩으로 되돌아와야 했다.

주리비아 한국대사관에서는 벵가지 인근에 있는 모 건설사의 발전소 현장으로 대피하라고 권유했으나 이들 일행이 해당 건설사 측에 직접 전화를 걸어보니 사설 경비원들을 동원해 현장을 지키고 있으나 그곳 역시 불안한 상태라는 답이 돌아와 토부룩으로 복귀할 수밖에 없었다.

이 지사장은 “아즈다비아에서 토브룩으로 거의 다 올 때쯤에는 인근의 화약고가 터졌는지 격렬한 폭발음과 함께 하늘 높이 치솟는 불길이 보여 모든 직원의 심리 상태가 매우 위축됐었다”고 전했다.

이들은 이날 오전에는 동쪽으로 방향을 잡아 이집트 국경 쪽으로 출발했다. 이번에는 도시기반공사의 시공사인 이탈리아 회사의 직원 20명과 터키인 60명이 합세해 함께 길을 떠났다.

이들 일행은 사막 도로를 따라 2시간 30분을 달리는 동안 도시마다 총기를 휴대한 자경대를 만났고, HIB 측에서 만들어 준 통행허가증을 보여주며 이들의 검문소 3곳을 차례로 통과했다.

HIB 측의 통행허가증이 없었고 자경대나 선량한 시위대가 아니라 혼란을 틈탄 폭도들을 만났거나 폭발 등이 탈출로에서 벌어졌을 경우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이 지사장 등은 이동 과정에 리비아 당국의 통제로 휴대전화가 쉽게 연결되지 않자 문자서비스(SMS)로 한국의 가족들에게 소식을 전하면서 안심시켰다.

이 지사장은 “국경에 도착해보니 리비아 쪽에는 세관원이나 출입국관리소 직원이 전혀 없고 민간인 복장의 자경대원들이 국경통과소를 지키고 있었다”며 “이들 자경대원은 국경을 넘으려는 이집트인들이 수없이 많이 몰려오자 행정절차를 생략하고 대부분 그냥 통과시켜줬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날 리비아 국경에는 이집트인 1만 명이 고국으로 탈출하려고 몰려들었으며, 이에 따라 이집트 당국은 국경 도시인 엘-살룸에 이들을 수용하기 위한 임시캠프를 마련했다.

이 지사장은 “우리가 2년 전부터 리비아의 토부룩에서 공사감리를 해왔는데, 이렇게 긴박한 일을 당하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며 “천신만고 끝에 이집트 쪽으로 넘어오니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들은 주이집트 한국대사관 측에서 제공해준 차량 편으로 23일 새벽 카이로에 도착하면 하루를 보낸 뒤 24일 오후 한국으로 출발할 예정이다.

주이집트 대사관은 22일 영사를 국경에 긴급 파견, 리비아 동부에서 이집트 국경으로의 탈출을 모색하는 교민들과 접촉하며 대피 방안을 모색하고 탈출에 성공한 이들을 국경에서 맞아 카이로로 이송시킬 계획이다.

외교부는 이와 함께 서부인 트리폴리 지역 교민들을 위해 전세기 등을 띄우는 방안을 추진 중이나 항공 상황 등이 여의치 않은 실정이다.

카이로=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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